뇌물(賂物)과 선물(膳物) _조석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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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단상<12>

뇌물(賂物)과 선물(膳物)

조석민 교수_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깨끗한 사회는 뇌물 통하지 않는 사회”

금년 추석(秋夕)은 예년과 비교해 볼 때, 좀 빠른 느낌이다. 추석이 되면 사
람들은 살아오면서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을 기억하며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
하여 그 은혜에 보답하려고 마음을 쓴다. 

준비된 선물은 사람을 기쁘게 해 

준비된 선물을 주고받는 마음 씀씀이는 참 귀하고 선물을 받는 사람을 기쁘
게 한다. 이런 경우에 선물을 준비하여 감사한 마음과 함께 전달하는 사람이
나 그 선물을 받는 사람 모두 즐겁고 유쾌하다. 그러나 추석 선물이 진정한 
선물이 아니라 선물로 포장된 뇌물의 성격을 지녔을 때, 그 뇌물의 부정적이
며 파괴적인 힘은 인간의 정신을 피폐(疲弊)하게 만든다. 
우리는 추석과 같은 명절이 되면 진정한 선물보다는 선물로 포장된 뇌물이 
활개를 치며 사회 여러 구석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을 안다. 성경은 교
훈하기
를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
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출 23:8)고 했다.
명절이 지나서 고위 공직자들이 받은 선물이 많은 경우에 참된 선물이 아니
라 뇌물인 것이 드러나서 뉴스로 보도되면 그 소식을 접한 모든 사람들의 입
에서 한숨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진정한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기에 청탁(請
託)이 따르고 그 청탁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선물로 위장된 뇌물을 주고받
은 당사자들 사이에 잡음이 생기며 결국 그 일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감사와 함께 주고받는 선물이 아닐 경우에 선물로 포
장된 뇌물로 쉽게 변질될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선물
과 뇌물의 차이는 백지 한 장 차이도 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선물을 받는 
사람에게 선물 자체가 큰 부담이 되어 당황스러울 때 선물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退色)되기 마련이다. 
명절에 감사의 선물로 떡값을 주고받았다고 항변하는 사람들이 말한 금액이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인 것을 듣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
은 그것이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안
다. 
일반적으로 선물은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이 선물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준비
할 때 마음에 기쁨이 넘친다. 선물을 받는 사람 역시 전혀 예상하지도 기대
하지도 않았던 것이기에 감사와 기쁨이 넘친다. 
본래 선물의 의미는 선물을 받는 사람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것으로 선물
을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일방적이다. 그래서 선물을 받는 사람 
역시 때때로 일방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성
경은 우리의 구원을 ‘하나님의 선물’로 비유해서 설명했다. 
바울은 에베소서 2:8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
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구원이 선물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적인 섭리 속에서 주어진 것이라는 의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선물을 받았을 때 그 사람이 선물을 받을 만한 어떤 조건
이나 이유 때문에 선물을 받는다면 그것은 선물이 아니라 상이다. 그러나 반
대로 어떤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데 그 사람이 잘 할 것을 기대하거나 바라면
서 선물을 준다면 그것은 선물이 아니라 뇌
물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창세기 32:13-20에 기록된 야곱이 그의 형 에서를 만나기 전에 준비한 예물
은 선물이라기보다는 뇌물이다. 왜냐하면 야곱은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
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창 
32:20)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야곱은 그의 형 에서를 위한 선물을 준비한 것
이 아니라 뇌물을 준비하여 에서의 마음을 달래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야곱의 뇌물은 에서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수량적인 면에서 어마어마
했다. 창세기 32:13-15에 의하면 야곱이 선물로 보낸 것은 가축만 모두 합해
서 550마리나 된다. 이 정도면 에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그 누구라도 그 많
은 분량의 뇌물성 선물을 보고 마음이 변했을 것이다. 어쩌면 야곱은 잠언 
21:14의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
게 하느니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그의 형 에서에게 뇌물성 선물을 보낸 
것일 수도 있다.
추석을 앞두고 교회 안에서 주고받는 선물이 너무 형식적이거나 관례를 따르
기보다는 진정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전달되는 소박한 것이기를 바란다. 교
회 공동체는 교회의 
지도자들인 목회자들에게 그 동안의 수고에 감사하면서 
그 마음을 담아 선물을 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힘겹
게 살아가는 다른 성도들, 즉 성경의 표현대로 ‘고아와 과부들’을 기억하
며 그들을 격려하는 정성이 담긴 추석 선물을 준비하여 전달하는 것이 필요
할 것이다. 
명절에 선물을 주고받는 우리의 풍습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려
면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짐이 되지 않아야 하고, 선물을 받는 사람도 그것
을 받으면서 너무 부담되어 당황스럽지 않아야 한다. 맑고 깨끗한 사회는 뇌
물이 통하지 않는 문화와 풍토가 정착된 사회일 것이다. 

당황스럽지 않은 선물이어야

교회 공동체가 실천적으로 앞장서서 뇌물이 없는 사회, 뇌물이 통하지 않는 
사회의 풍토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