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의 목회편지(105)
딤전 5:24-25
죄와 선행
조병수 교수_합신 신약신학
두 가지 기억이 엇갈린다.
첫째 기억. 우리가 어렸을 때는 고약한 장난질을 서슴지 않고 저질렀다. 어
느 날 나를 포함해 동네 친구 서너 명이 구멍가게에서 과자봉지를 하나 슬
쩍 하기로 모의를 했다. 우르르 가게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주인 아
저씨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동안 한 녀석이 과자 봉지를 품에 안고 나오
는 것이었다.
두 가지 상이한 기억남아
둘째 기억. 우리 반에는 소아마비로 양손에 목발을 짚어야 하는 친구가 있었
다. 지체장애 때문에 그 아이는 책가방을 수레 끌듯이 가지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는 마침 우리 집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학교에 오고가는 길
에 내가 늘 가방을 들어다주었다.
과자봉지를 훔친 날 저녁에 온 동네가 소란스러웠다. 구멍가게 주인 아저씨
가 눈을 부라리며 집집마다 찾아와서 우리를 색출해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아저씨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친구들을 한 명씩 끄집어내는 소란스러
움이 우리 집 쪽으로 다가올수록 방안에 꼼짝도 못하고 앉아서 어떻게 하면
내가 그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까 머리를 짜냈다. 그러나 그날
밤 구멍가게 주인 아저씨는 기어코 나를 찾아내고 말았다.
지체장애로 통학하는데 고생하는 친구의 가방을 거의 매일같이 들어주던 어
느 날 종례 후에 담임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선생님은 정말 인자한 미소를
얼굴에 띄우시고는 내 손을 다정스럽게 잡으시면서 언제부터 내가 친구를 도
와주었는지 자세히 물어보셨다. 내가 너무나도 당황해서 얼굴이 붉어지며 말
을 더듬거리자 선생님은 나의 행실을 이미 다 알고 계셨다는 듯이 칭찬해주
셨다.
우리는 우리의 부끄러운 실수가 감추어지기를 얼마나 고대하는가? 그리고 그
런 수치스러운 잘못을 저지르는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알리바이를 만들어내
기 위해서 온갖 애를 다 쓴다. 그러나 때가 되면 마침내 죄악의 진상은 드러
나고 만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가 없다.
종종 우리는 우리가 행한 아주 작은 선행이 너무나 보잘것없어서 남에게 알
리기는 것은 고사하고 우리 자신마저
도 기억 속에 남겨놓지 않는 경우가 많
다. 그러나 이것도 때가 되면 반드시 알려지게 된다.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
이 선행은 칭찬을 받는다.
사도 바울은 죄도 밝히 드러날 것이고 선행도 밝히 드러날 것이라고 말한
다. 여기에 사도 가 가르치려는 첫째 내용은 결코 비밀이란 것은 없다는 사
실이다. 이것은 죄에도 해당되고 선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영원토록 숨길
수 있는 죄는 없다. 죄가 혹시 인간에게는 비밀이 될 수 있어도 하나님께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는 아무리 은닉하려고 해도 결국 폭로되고 만
다.
이와 비슷하게 선은 우리가 드러내지 않아도 자연히 알려진다. 하나님은 선
한 것을 만방에 선포하기를 좋아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행한 선한 일
을 그대로 덮어두시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선행을 스스로 드러내
려고 할 필요가 없다.
사도 바울은 죄악도 밝히 드러나고 선행도 밝히 드러날 것이라고 말함으로
써 분명하게 심판사상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여기에서 “심판에
나아간다”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심판사상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 보응사상이다. 사실 보응사상은 바울
의 신학에서 아주 중요한 근간으
로 역할을 담당한다(롬 2:6-11 참조). 다시 말해서 죄든지 선이든지 하나님
의 심판에 따라서 가장 적절한 보응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죄악도 선행도 밝히 드러날 것이라는 사도 바울의 말 이면에는 종말사상이
있다. 그래서 뒤집어 보면 바울에게는 이런 말로 종말사상을 가르치려는 의
도가 있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바울의 서신 거의 모두에 종말
사상이 표현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그 중요성을 의심할 바가 없다. 종말은
반드시 올 것이며, 종말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을 것이며, 종말심판에 따라
조금도 틀림없는 보응이 있을 것이다.
종말에 선행과 악행 심판 있어
구멍가게 아저씨를 골탕먹이던 일과 지체장애 친구를 돕던 일을 조화시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나이를 먹을수록 부끄러운 실수가 줄어들고 선행이
늘어나서 이런 부자연스런 조화가 깨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