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전 4:3) 빛보다 더 밝은 빛
교회는 ‘하나님의 표준’에 서 있어야
열심은 부러움보다 두려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열심이 없는 것은 작
지 않은 문제이다. 열심의 결핍은 신자 뿐 아니라 교회에 냉랭한 기운이 감
돌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때 신자는 감동을 맛보지 못하며 교회는 능력을 발
휘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주 신자와 교회는 열심을 가지도록 권면을 받는
다. 하지만 열심이란 것이 언제나 당연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열심 때
문에 심각한 지적을 받는 사례가 비근하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지나친 열심도 문제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유별난 열심을 내세웠던 엘리야의 모습은 그렇게 칭
찬할 만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성전에 올라온 바리새인이 기도 중에 자신
의 열심을 죄다 늘어놓은 것을 주님께서 긍정적인 의미로 설명했다고 생각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
은 그들에게 열심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열심이 지나쳤기 때문이다. 열심
이 지나친 것은 열심이 모자란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정말로 경계해야 할 것은 열심의 결핍 뿐 만 아니라 열심의 과도이
다. 지나친 열심의 뿌리에는 종종 교만한 마음과 과시의 의도가 도사리고 있
기 때문이다. 지나친 열심은 하나님에게서 나오지 않고 사람에게서 나온다
(롬 10:2-3). 그래서 경건보다 더 경건한 것은 불경이며, 빛보다 더 밝은 빛
은 어둠이고, 하나님보다 더 하나님인 체 하는 것은 사탄이다(살후 2:4).
더 경건한 것이나 더 밝은 빛, 그리고 더 하나님인 체 하는 것에 대하여
부러움을 가지는 것은 어리석음 그 자체이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집요하
게 따지는 외식함과 거짓말과 화인 맞은 양심이란 빛보다 더 밝은 빛을 내려
는 인본주의적인 시도와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빛에 가까운 어둠도 문
제이지만 빛보다 더 밝은 빛도 문제라는 것이다. 진짜 같은 가짜도 위험한
것이지만 진짜보다 더 진짜도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진리 곁에 있는 거짓
을 경계해야 하는 것만큼 진리보다 더 진리도 경계해야 한다.
지나친 열심은 인간적인 생각
n 디모데 앞에 등장한 어떤 사람들은 혼인을 금지하고 음식을 폐지했다. 이
것은 얼마나 경건하고 신앙적으로 보이는가. 남다른 경건과 엄청난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고는 혼인을 금하고 음식을 폐하는 이런 강렬한 행위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놀라운 열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사도
바울이 이 사람들의 독신추구와 금식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 않다
는 데 있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이 사람들의 독신과 금식이 오류라는 것을 반영하듯
이 디모데전서 여기저기에서 혼인하는 것과 섭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임
을 천명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한 아내의 남편인 것(3:2), 한 남편의 아
내인 것(5:9)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지 말하며, 심지어 젊은 여자는 시집가
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라고 권면했다(5:14). 또한 사도 바울은 먹을 것
을 가지고 있을 때 자족할 줄 아는 자세를 요구하였고(6:8), 이 단락에서는
아주 간명하게 음식물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기 때문에 믿는 자들과 진리
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4:3).
인위적인 것보다 자연스러움이 돋보여
사실 경
우에 따라서 사도 바울에게는 독신이나 금식이 경건과 신앙의 분량
이나 정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은사나 기능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혼인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은사이기에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
람은 저러하다(고전 7:7). 고기와 같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형제를 실족
하지 않게 하는 기능에 적합한 것이다(롬 14:21; 고전 8:13).
그렇기 때문에 혼인을 금하고 음식을 폐하는 것이 열심있는 경건과 신앙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인본주의이
다. 만일 독신과 금식이 그런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것은 경건이 아
니라 불경건과 신앙이 아니라 비신앙이다.
근본적으로 볼 때 교회가 싸워야 할 대상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처럼 보인
다. 압축하면 교회의 싸움은 하나님의 표준에 미달하는 것과 과월하는 것에
대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단지 말씀이 가는 곳에 가고 말씀이 서는
곳에 설 때 승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