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교회는 전인적 인간 위한 터전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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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전인적 인간 위한 터전 되어야

김영규 목사/ 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배구에 시간차 공격이 있다. 지구지반이나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것도 시간
차 예방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과 우주로부터 특별한 전자파들에 
대한 연구나 가장 먼 우주의 실체에 관한 연구는 이미 오래된 과거에 대한 
연구이기 때문에, 그 변화를 발견하였을 때는 이미 지구에 영향을 준 이후 
과거 지구에 대한 증거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즉 우리로부터 발견된 가장 먼 은하계의 광년이 지구의 물질입자들의 나이보
다 적을 수 있어도, 우주의 변화로 인한 지구의 멸망은 시간차 예방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종말은 도적같이 오지만 각인
의 눈이 그 현장을 보도록 오는 신비한 종말(계 1:7)이다. 

신비한 우주의 현상계

고고학의 오류들은 근원적으로 인간 뇌현상으로 인한 오류들 이외에 이런 시
간 개념에 있어서 오류들이 많다. 그런 시간이나 정보의 개념들을 확대하여 
우리 몸이 
일반적인 지각들을 통해서 얻는 정보방식 이외에 다른 정보방식
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증명된다면, 계시나 꿈과 같은 현상들을 
좀 더 과학적으로 잘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의식의 지향적 커서는 시각 현상 안에 있는 지향적 커서에 불과한 것
이 아니라 계속 흐르고 있는 다른 복합계 안에 있는 지향적 커서이다. 즉 가
시적 빛들의 제한된 파장들을 분별하여 형성된 화면의 제한된 커서가 아니
라 접촉이나 소리파장 등 다른 파장들을 인식하여 그런 시각의 3 차원 이상
의 화면과 복합적으로 어울러 하나의 커서가 형성되어 있다. 

시간을 초월하는 의식 세계

그러나 우리가 의식하기 전 혹은 우리가 의식할 수 없는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런 정보들이 변환될 때 결합되어 있
는 인간의 의식의 삼차원 이상의 시상 화면에는 외부 정보들이 없이도 안구 
운동을 필요로 하고 있다. 
왜냐하면 꿈에서도 자아는 꿈을 꾸고 있는 자로 꿈 밖에 있고 그 자아가 꿈 
밖에서 꿈의 현상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각도들에 따라 안구운동이 동시
에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왜 꿈을 꾸고 어떤 
특정한 꿈을 꾸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래나 과거, 현재에 관계없는 동시적 파
장이 존재하고 그 파장들을 지각하는 능력이 잠재적으로 인간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시각과 전혀 다른 경로로 그 정보들이 들어오고 있는지도 모
른다. 
우리 몸에 우리 우주의 경계선 고리로서 역할을 하는 블랙홀 세계를 넘어 그
런 세계로부터 오는 정보 통로로 기능하는 영혼과 같은 전혀 다른 독특한 세
계가 존재한다면, 그런 가설들은 단순히 상상의 세계만은 아닐 것이다. 세계
는 우리가 그렇게 자신을 보듯이 우리의 세포들의 활동과 거시세계의 정보들
의 유동까지 모든 것을 동시에 보시는 하나님의 시각(렘 20:12; 계 2:23)이 
전제되어 있다. 

초월 현상 인지하는 기준 필요

중성미자와 같은 검은 물질이나 검은 근원적 에너지가 겨우 5 퍼센트에 불과
한 우리 우주의 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그 물
질이나 에너지 개념은 아직도 애매하다. 미래 과학의 발전은 기존의 상식으
로부터 자유로워야 가능하다. 
요즘 자라는 세대들의 경우 이런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길이 막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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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세계 속에 경쟁하기 위해서 이중언어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어릴 때부
터 뇌의 한 곳에 동시에 이중언어능력이 구사되도록 교육받기에 급하고 기업
윤리, 테러, 노숙자 문제, 공공정신 등 제반 사회문제들을 푸는 낙오자 없
는 교육 단계인 초등학교 4학년 이내 국민교육을 끝내며 이제 대상에 대해 
거리를 가지고 깊게 생각하게 하는 인적자원들을 만드는 교육과정에서 전 인
구의 가장 객관적으로 평가된 개인파일들이 만들어져 갈 때에도 물론 거기
에 불평등이 있게 마련이다.

세상 교육은 규격화되고 있어

사회 전체의 분위기 안에 상상의 세계의 폭을 넓이고 깊게 하도록 도우는 공
간이 있어야 그런 불평등이 조금씩 해소될 수 있다. 아무리 돈을 버는 자원
이 된다고 해도 뛰고 웃기고 욕하고 외치고 때리는 것이 전체 사회분위기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감각들이 안식하는 곳은 자연으로 족하고 교회와 같은 공간들은 미래 인간에
게 있어서 영혼이 쉬는 곳이어야 한다. 아무리 각박하여도 각 자의 가까운 
곳에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고 쉴 수 있는 피난처가 있어야 한다. 기독교
는 창조된 마음이 진정하게 어떻게 쉴 
수 있고 안식의 내용이 무엇이며 어디
에서 쉴 수 있는지를 가르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