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교수의 목회서신 연구(42)-아내 목회 (딤전 3:2)

0
16

아내 목회 (딤전 3:2) 

조병수 교수/ 합신 신약신학

가정은 교회의 터전이다. 가정 없이는 교회도 없다. 이 사실은 초대 기독교
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으로부터 회피할 수 없는 증거를 얻는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자신의 가정집을 예배처소로 사용하도록 제공한 경우
나, 고넬료와 루디아에게서처럼 부부, 부모, 자녀, 친척, 친구 등으로 이루어
진 가족 모두가 함께 기독교의 신앙으로 회심하는 경우나, 스데바나의 가족
이 전체적으로 기독교 복음의 확산을 위하여 헌신한 경우는 초대 기독교가 신
자의 가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을 단적으
로 시사해준다. 

이런 맥락에서 사도 바울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는 사람은 책망할 것이 없
는 사람으로서 무엇보다도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못박은 것은 결코 
뜻밖의 일이 아니라 오히려 의미심장한 일이다.

왜 사도 바울은 구태여 감독의 직분을 사모하는 사람이 “한 아내의” 남편이어

야 한다고 역설하는가? 틀림없이 이러한 진술은 당시의 로마-헬라 문화에서 
성적인 문란함이 팽배해있었던 것을 반영한다. 당시에는 남자들이 여러 여자
와 상대하였을 뿐 아니라 여자들도 여러 남자와 상대를 하였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조건
을 제시했을 때, 그것은 당연히 성적인 윤리의 차원에서 부패한 사회를 공격
하는 강력한 도전의 말이며 동시에 건전한 가정윤리를 형성하는 새로운 사회
를 향한 강력한 권면의 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는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이성 도덕(sex moral)의 
문제에서 실패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경악하며 한탄해야 한다. 많은 경우
에 그 문제가 은닉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연루된 대다수의 목회
자들이 양심에 일말의 가책이나 최소한의 공개적인 회개도 없이 어쩌면 그렇
게 버젓이 목회자로 활동을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런 이성문제를 일으킨 목회자들이 더 인기를 얻고 있다
는 것이다. 아마도 오늘날 신자들은 심지어 음행과 같은 더 많은 경험을 쌓
은 목회자를 좋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유유상종이니까. 
또 어떤 목회자들은 자신의 성적 치부를 감추기 위하여 더 거룩함으로 치장
을 하고 다른 이들의 치부를 드러내는데 힘을 기울인다. 이른 바 똥 묻은 개
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영적 지도자 집단은 바로 이 문제에서 실패함으로써 기독교는 머리 
잘린 닭이 피를 뿌리며 마당을 뛰어다니듯이 아무런 방향 없이 우왕좌왕하다
가 결국은 몰락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감독의 직분을 사모하는 사람이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
다”고 덧붙인다. 한 마디로 말해서 목회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아내에 
대한 책임을 가지라는 것이다.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헌신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이 목회자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아내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이지 못하는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헌신적으로 사랑한 것을 이해하
지 못하기 때문이다 (엡 5:25).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주시기까지 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
는 사람은 절대로 목회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아내를 
이용해서 자기의 유익을 채우
는 비열한 남편이 되기 싶기 때문이다. 초대교
회 당시에 성도를 자신의 자랑거리로 삼거나 (갈 6:13), 성도를 종으로 삼거
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하는 (고후 11:20), 심지어 성도를 이용해서 자기 
몸만 기르는 거짓 목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어찌 잊으랴 (유 12). 

그래서 진정으로 진실한 목회자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가장 먼저 가정에서 
아내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을 배워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주님과 교회의 일을 위한답시고 아내에 대한 책임을 소홀히 하는 것이 과연 
바른가? 한 아내 외에 다른 여성에게 눈을 돌리는 남편도 목회자가 될 자격
이 없다면, 남편으로서 아내를 위한 책임을 지지 않는 남편도 목회자가 될 자
격이 없다. 목회자가 아내의 신망을 잃으면 목회의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그러므로 아내에 대한 목회가 교회에 대한 목회의 진정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