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이스라엘’이 존재하는가?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작금에 이르러 ‘백 투 예루살렘’이라는 운동과 더불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교회와 성도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연 그러한가?
처음 교회가 세워지고 난 후 바울은 이방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선포했고 유대주의자들과는 다른 신학 사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거나 특권적인 지위에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비록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불순종하고 비극적인 위치에 빠져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는 여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더 이상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분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스도 안에서 옛 장벽은 무너졌고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평등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역사적인 유대인의 신분이나 특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이 누렸던 신분과 특권에 접붙임을 받은 것으로 바울은 이해했다.
하지만 이제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곧 새로운 이스라엘의 일부가 되었다. 때문에 바울은 이방 선교를 구약에서 밝힌 약속의 성취로 이해했다. 이때 바울은 유대 율법과 할례를 이방인 개종자에게 부과하지 않는다고 해서 조상의 신앙을 배신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 일로 유대인들과 심지어 유대 기독교인들과 첨예한 대립을 하게 되었지만 바울은 자신이 유대의 율법과 전통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이방 교회들로부터 연보를 모은 것도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의 통일성, 즉 교회가 둘이 아닌 하나임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울이 이방인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를 하나의 통일체로 여긴 것은 이방인들이 아브라함의 가족으로 편입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나아가 바울은 이 연보를 이방 열방들의 부가 예루살렘으로 흘러들어 올 것이라는 선지자들의 예언 성취로 이해했다.
이로써 바울은 그리스도의 구속과 부활을 통해 율법의 성취로 완성된 복음을 믿음으로 온 세상의 모든 만민들이 새로운 질서의 세계에 속하게 되었음을 증거했다. 따라서 이제는 더 이상 ‘이스라엘’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와 그렇지 않는 불신자들만 이 땅에 존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