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는 이적보다 말씀이 앞선다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드로아에서 밤중에까지 계속된 바울의 강론을 듣다가
마침 윗다락의 창에 걸쳐 앉아 있던 유두고가 깊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그
만 삼 층 누에서 떨어져 죽는 일이 발생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누가가 의
사였다는 점에서 유두고의 죽음을 정확하게 관찰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때 바
울이 내려가서 유두고의 시신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떠들지 말라 생명
이 저에게 있다”(행 20:10)고 말하였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생명이 그에게 회복되었다는 의미이다. 바울
은 유두고의 생명이 회복될 때까지 유두고를 안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이와
같은 행위는 마치 사렙다에서 과부의 죽은 아들을 껴안아 소생시킨 엘리야
를 보는 것 같다(왕상 17:21-24). 우리 주님께서도 나사렛 설교 중에서 이
사건을 예로 들어 말씀하신 바 있다(눅 4:24-27). 비슷한 일이 수넴에서 과
부의 아들을 소생시켰던
엘리사에게서도 발견된다(왕하 4:24).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되돌리는 능력은 선지자들에게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
다. 우리 주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으며(눅 5:22-43), 가버나
움의 백부장이 사랑하는 하인을 살리셨으며(눅 7:1-10), 나인성에서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다(눅 7:11-17). 심지어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냄새가 나는 나
사로를 살리셨다(요 11:1-44). 베드로 역시 욥바에서 죽은 다비다를 살려내
었다(행 9:36-42).
이처럼 죽음에서 생명으로 되돌리는 능력은 오로지 생명을 창조하시고 생명
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고 있다. 따라서 바울이 죽은 유두고를
살리는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의 처소가 자칫 장례식장이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오히려 위로를 받는 복
을 누리게 되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은 유두고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엄청난 사건이 있
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강론은 날이 새기까지 계속되었다는 점이다. 이것
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사건보다 더 놀라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건마저도 바울
의 강론을 중단하게 할 수 없었다.
교회는 이적보다 말씀이 앞선다는 사실이 그렇다. 이 ‘말씀’은 교회를 생
명으로 되돌려 놓는다. 그리고 교회는 그 말씀으로 진정한 위로를 받는다.
드로아의 교회는 유두고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건보다는 바울의 말씀 강
론에서 진정한 생명을 발견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