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도덕성 함양하는 모범 보여야
송영찬 국장 daniel@rpress.or.kr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사 66:22)는 선언은 새 나라
의 영원성을 보여준다. 이 말은 문자적, 상징적인 의미에서 의인들에게 주어
질 새 나라가 영원하다는 의미를 초월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여호와께서
새롭게 창조하는 새로운 질서의 세계이다(사 61장). 이 말은 현상의 세계가
유한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한다.
새 나라가 현상의 세계를 초월한다는 것은 유한성을 초월한다는 점에서 그 극
치를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새 나라는 모든 현상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개념
을 거부한다. 마찬가지로 물질적인 개념의 영원, 즉 무한대라는 개념을 새
나라에 적용시킬 수 없다. 무한대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서 이해되어지기
때문이다. 새 나라의 영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개념이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새 나라의 도래는 두 가지 현상을 동반한다. 곧 의인들이 여호와께 경배하
는 것과 악인들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심판은 정화를 목적으로 하는 제한적인 심판이 아니다. 그 안에
서 또 다시 여호와의 긍휼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시고(사 66:15) 불과 칼로 심판하신다(사
66:16)는 말은 최후 심판의 종말론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악인들
은 영원한 형벌의 선고를 받게 된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
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는 선언은 악인에게 더 이상 다른 길이 없다고 단정짓
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너무나 감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소돔성에 심판이 임박한 바로 그 전날 밤에 소돔성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심판이 실지로 내 앞에 이르기 전까지는 전혀 실감하지 못
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
다. 아마도 오랜 시기동
안 평화로운 시기가 계속되다보니 사람들이 그만큼
정신적 긴장감에서 해이해진 것으로 보인다.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들의 신
앙 생활조차 나태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에 주신 평안
으로 인해 신앙 생활의 긴장감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
다. 교회만이라도 깨어 있어 이 시대의 도덕성을 함양하는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