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찬 국장/daniel@rpress.or.kr
부활신앙 고백하는 교회되어야
우리에겐 명백한 신앙이 있다. 곧 창조주이시며 구속자이신 하나님과 부활을
통해 구원 사역을 완수하신 성자 예수님과 성도의 견인을 통해 영화의 과정까
지 함께 하시는 성령님에 대한 고백이 그것이다. 이 신앙은 우리들의 모든
지, 정, 의를 포함한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삶의 형태 역시 이 신앙에 근거
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부패한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모든 삶을 지탱한
다. 소위 요즘 문화 속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는 뉴에이지(New Age) 운동도 따
지고 보면 인본주의의 원조인 가인에게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의 인격과 생명까지도 무참히 말살해 버리는 가인이즘이 곧
인본주의의 뿌리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언제나 인본주의자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
다. 때론 학문을 빙자하거나 문화 혹은 개발을 빙자한 형태의 교묘한 방법을
동원해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
이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
든 생활 전선은 곧 인본주의자들이 그어 놓은 세속주의와 대치될 수밖에 없
다. 그들은 교묘한 방식으로 휴먼이즘을 내보이며 더불어 살아야 하지 않겠느
냐고 하는 사탄의 달콤한 유혹처럼 그물을 펼쳐 놓고 있는 것이다.
언론이나 방송까지도 철저하게 인본주의자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어, 갖가지
형태로 우리들의 신앙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기독교의 이름
까지도 서슴없이 가져다 사용함으로서 그 실체를 감추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는 그 실체를 파헤치기 전까지 그들
은 우리와 같은 동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열악한 위치에 서 있다. 그렇다
고 우리는 이 세상을 등지고 살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살아 있는 동안 부득
이 그들과 함께 경제 활동을 비롯해 문화, 정치 활동을 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의 정체성(identity)을 지켜 나가고 우리 문화
를 바르게 세워 나가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이미 서두에
제시된 것처럼 명백한 신앙고백에서 찾아야 한다. 그 중에서 부활신앙은 기독
교의 핵심 중 하나
이다. 우리에게 부활신앙이 없다는 것은 곧 사망에 속해 있
음을 의미한다. 부활신앙이 연약하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에게 치명적인 것이
다.
이번 부활절과 더불어 우리의 부활신앙을 점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개인적
인 차원에서도 그러하겠지만 교회 공동체로서의 부활신앙을 공고히 해야 한
다. 교회가 부활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교회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부활절은 전 교회원들이 공적으로 부활신앙을 고
백하는 예배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