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평암(平岩) 장경재 목사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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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평암(平岩) 장경재 목사를 기리며

지난 20세기는 세계가 혼돈과 혼란에 빠졌던 격동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
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과 냉전 이데올로기 그리고 쏘련연방공화국의 
해체와 더불어 공산주의 국가의 자유시장 경제원칙 도입, 달에 사람의 발자국
을 남긴 우주항공공학과 컴퓨터 등 과학의 발달, 인터넷과 인간 게놈 지도 해
독을 비롯해 복제 인간 문제 등등 과거 수 천년의 변화보다 지난 한 세기의 
변화는 가히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한반도 역시 격동의 세기를 겪었다. 왕조의 몰락과 더불어 봉건체
제가 무너지고 일제의 합방과 수탈 아래 근대 자본주의 도입에 따른 시장경제
의 활성화 그리고 3.1 만세운동, 민족상장의 6.25 내전, 민주화의 4.19 의
거, 군사정권의 5.16 혁명과 12.12 사건 등등 과거사 어느 때보다도 혼란과 
혼동이 교차되는 시기였다.

더불어 한국교회 역시 이러한 세계적인 혼란과 한반도의 격동기를 거치며 우
리 민족과 함께 격
동의 시기를 겪으며 민족의 등불로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
나 반면에 자유주의 신학의 유입과 교권주의의 팽배에 따른 교단의 분열사는 
세계 교회사에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이다. 이제는 교단의 숫자조
차도 몇 개나 되는지 셀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심지어 “성경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어엿한 목사로 그리고 교계 지도자로 나
서고 있는 실정이며, 더불어 이단과 사이비가 난무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러한 혼란과 격동의 시기에 칼빈의 개혁 신학을 파수하고 청교도의 장로교 
신앙을 보수하기 위해 한국 교회사와 함께 한 평생을 살아 온 증인 중 하나
인 평암(平岩)의 소천은 우리 교단을 떠나 한국 교회의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평암은 우리 민족이 일제와 공산주의의 혹독한 탄압을 극복한 역사
의 현장을 살아오며 개혁신앙을 지켰고, 자유주의 신학과 교권주의의 부당함 
앞에서 오로지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회자로서 온 생애
를 기꺼이 바쳤던 것이다.

평암은 정암(正岩) 고 박윤선 박사와 함께 합동신학원을 세워나가는데 누구보

다 앞장서서 본을 보였으며 그의 기도는 오늘날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를 가
능하게 했던 것이다. 비록 500여 개 교회의 작은 교단에 불과하지만 합신 교
단은 개혁신학과 신앙을 대표하는 한국교회의 보루로 당당하게 서 있게 된 
것 역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건실한 신학과 학문에 대한 열정이 있어 가
능한 것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1400여명의 개혁주의 목회자를 배출할 수 있
었던 것은 이처럼 정암과 평암의 기도 그리고 이들을 신뢰하고 적극적으로 후
원하며 함께 짐을 나누었던 전국 교회의 헌신이 있어 가능했던 것이다. 무엇
보다도 그는 신학자가 아닌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는 점
에서 우리의 귀감이 아닐 수 없다.

이제 평암은 한 평의 땅에 묻혀 그의 육신은 흙으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그의 
정신은 합신 교단의 밑거름으로 여전히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줄 것이다. 그
리고 정암과 같이 우리 교단의 정신적 지주로서 영원히 함께 남아 있을 것이
다. 더욱 감사한 것은 합동신학교에는 정암과 같은 학자들이 여전히 건재하
고 있고 우리 교단에는 평암과 같은 목회자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는 사실이
다. 
이것이 진정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제목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