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뜨락| 지는 꽃이 아름답다 _ 이명숙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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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특집 | 은혜의 뜨락

 

지는 꽃이 아름답다

– 마흔 한 살 딸의 간병기

 

<이명숙 집사 _ 부천평안교회>

 

혼자 일하시며 제대로 끼니도 못 챙겨 드실 아버지가

마음에 걸리고, 아프신 어머니 옆에 있어야 하고

 

71세 되신 친정어머니께 여느 때와 같이 금요일 퇴근 중에 안부 전화를 드렸다. 그런데 어머니가 통화중 의외의 말씀을 하셨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딱 죽었으면 좋겠다.” 깜짝 놀라서 자초지종을 여쭈니 자식 걱정할까 봐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허리 아픈지 꽤 되었고 그곳 병원에서 검사하고 주사 맞고 다 해도 차도가 없으시다는 것이었다. 바로 다음날 토요일에 인천에 있는 허리 전문 병원에 모시고 갔다. MRI 검사 결과 척추 협착증이 심해 신경을 눌러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까지 아프시니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하셨다. 의사가 “60년이 넘도록 고생한 허리잖아요” 이렇게 말을 하는 순간 주책없이 진료실서 눈물이 갑자기 와락 쏟아졌다. 어디 고생한 것이 허리뿐이겠는가?

진료를 마치고 점심을 먹는데 어머니가 안 하시던 옛날이야기를 하셨다. “엄마 아빠가 분가할 때 신혼 살림살이는 정말 숟가락뿐이었고 분가한 첫 날 짐 날라 주던 동네 사람들이 짐에 쌀이 없는 것 보고 모아 준 쌀로 밥을 지어 먹었다. 그 다음부터는 결혼반지 팔아서 밀가루 한 포대 사다가 칼국수, 수제비를 번갈아 해 먹으며 땅이 없으니 남의 집 일 해 주면서 살았다. 오빠를 가졌을 때 먹을 것이 없어 배고파 고생했다.” 시면서 “그렇게 살기 힘들고 막막하니 아빠가 너희들 어릴 때 고약하게 굴었던 것이니 이해해라” 라고 하셨다. 백화점 지하 그 북적대고 사람 많은 넓은 공간에서 또 주책없이 엄마와 나는 두 번째 눈물바람을 했다.

수술을 앞두고 어머니는 마음이 많이 약해지셨다. 이제는 일을 못하니 무슨 재미로 사니. 몸이 아픈 것도 서럽지만 그보다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니 강제로 은퇴를 당하신 기분인가 보다. 평생을 농작물 가꾸며 그것들 하루하루 자라는 것 바라보는 재미로 살아오셨는데, 강제로 퇴직을 해야 하는 어느 직장인과 같은 심리인 듯하다. 수술 하루 전 입원하고 심란해 하시면서 눈물 흘리시는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 드리며 함께 울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 오셨고 그만 일해도 된다고 일하는 것 말고 다른 재미를 찾아서 지내시라고 했다. 아버지랑 맛난 것 드시러 다니고, 아버지 전도해서 함께 교회생활 열심히 하시고 기도하면서 사시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말이나 위로도 한두 번이지 입원하신 1주일 기간 내내 지속되니 나도 지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좋은 말로 위로해 드렸으나 반복되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교회 원영대 담임 목사님께서 매해 어버이날에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노인의 심리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지고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끼고 쉽게 서러워하신다. 지쳐갈 때 들었던 말씀을 떠올리니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 드릴 힘이 났다.

저녁때 집에 와서 말씀을 기록해 두는 노트를 찾아보았다. “효도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라는 제목으로 신명기 5장 16절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를 본문으로 하신 말씀을 찾았다. 기록해 놓은 것을 찬찬히 다시 읽어 보았다. 효도의 당위성과 효도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말씀을 빼곡히 정리해 놓았다. 설교노트를 쭉 읽는데 마지막으로 알려 주신 잠언30장 17절의 말씀,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에 눈이 멎는다. 초등학교만 나오신 두 분이 잘 몰라서 자주 물어보시는데 답하기 귀찮아했다. 흰 머리 앞에서 겸손히 일어서서 두 분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존중해 드려야겠다고 반성을 했다.

그리고 누웠는데 작은 딸이 옆에서 서럽게 울고 있다. 왜냐고 물으니 “오늘 휴일인데 하루 종일 너무 오랫동안 엄마랑 떨어져 있었어. 그래서 많이 슬퍼” 작은 딸을 안아 주고 위로해 주면서 몸이 세 개만 되면 좋겠다. 싶었다. 시골에서 어머니 없이 혼자 일하시며 제대로 끼니도 못 챙겨 드실 아버지가 마음에 걸리고, 아프신 어머니 옆에 있어야 하고, 아직 어린 자식도 걸리고…… .

짧은 시간 병간호 하면서 세 사람이 떠올랐다. 폐암 말기이셨던 시아버지를 위해 남편은 한 달간 휴가 내고 그 곁을 지켰는데 그 때 남편의 마음을 살피고 공감해 주지 못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같은 구역이던 K언니도 떠올랐다. 언니의 친정어머니가 교회 주변 가까운 요양병원에 계셨는데 고작 딱 한 번 가 봤다. 그와 관련해 잊지 못할 장면이 하나 있다. 딸기를 사갔는데 음식을 잘 못 넘기실 때라 언니가 딸기를 입으로 잘게 잘라서 언니 어머니의 입에 넣어주었다. 마치 아가처럼 K언니의 어머니는 잘 받아 드셨다. 우리가 기억도 못할 만큼 어릴 때 분명 어머니들은 그렇게 우리를 먹이시고 키우셨으리라. 그 은혜를 이렇게 갚아드리는구나. 몇 만분의 일이라도. 마지막으로 H씨가 떠올랐다. 그 긴 시간 동안 병마와 싸우시는 자기 어머니를 지켜보던 H씨는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을까?

옷을 입혀 드리며 어머니의 벗은 몸을 보았다. 근육은 사라지고 깡마른 몸에 피부는 쳐져 있었다. 어머니도 팽팽할 때가 있었으리라. 힘든 농사일 하며 자식들 낳고 키우느라 이리 되신 것이겠지. 그래서 늙은 부모의 깡마른 몸은 처녀보다 아름답고 숭고하다. 10월 말 공원에서 아직 피어있는 장미꽃을 보았다. 마른 가지와 함께 있는 이 장미는 냄새가 없었다. 매력적인 향기는 없지만 이 늦가을에 져 가는 저 장미는 농익은 빨간색을 내고 있었다. 지고 있는 장미가 더욱 아름답다. 왜냐면 다른 많은 장미를 낳았을 것이기에.

부모님이 아프시니 정말 속상하다. 내가 아픈 것처럼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바보처럼 그래도 일하시려는 모습에 화가 나고. 헌신적으로 우리를 보살피고 키우시느라 아픈 것이니 죄송한 마음도 크다. 연세는 점점 더 들어가시고 여기저기 더 심각하게 많이 아프실 텐데, 이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잘 대처해야겠다. 평생 김치를 얻어먹었으니 이제 김치를 담가 가지고 내려가야겠다. 아 긴장된다. 맛깔나게 될 것인지. S권사님께 배우러 가야겠다.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복잡하고 힘든 일을 만나든 이것만은 확실하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말씀기록 노트를 유산 1호로 물려 줄 것이다. 말씀 기록 노트에 기도 제목과 응답 기록, 말씀대로 살고자 애쓴 기록, 실패한 이야기까지 덧붙여야겠다.

 

*이명숙 집사는 인천에서 17년 째 결과의 평등에 기여하고자 애쓰며 학생들과 동고동락하는 국어교사이며 중등 3학년, 초등 5학년인 딸들과, 갱년기 남편과 함께 사는 ‘40대 아줌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