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 조주석 목사, 영음사 편집국장, chochuseok@hanmail.net >
그들은 어떻게이단이 되었는가
|알리스터 맥그라스, 포이에마, 2011년, 396쪽|
“신앙의 경색 아닌 신앙의 성숙을 위한 교리공부에 힘써야”
씨가 말라가고 있다. 무슨 소린가. 동생하고 어느 날 이야기하다 들은 말인데 지방의 어느 국립대학교에는 학생 복음 단체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단다.
왜 이 불행한 사태가 온 것인가. 도가 지나치게 열광적인 신천지가 활보하고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들은 사상 강요, 자유에 대한 억압, 권리 침해 같은 어두운 구석들을 가지고 있다. 이 사악한 처사가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나이 든 사람으로서 자못 염려스럽다.
맥그라스는 생뚱맞게 서구의 맥락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 싶은 주제를 다뤘다. 『이단: 진리 수호의 역사』(Herecy: A History of Defending the Truth)라는 책인데 우리말로는 『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로 옮겼다.
이 책은 서구보다는 도리어 지금 이단과 사교가 넘실대는 우리 현실에 더 어울리는 주제로 보인다. 이단과 사교는 지금도 수많은 십자가 지붕 밑에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 은거하면서 진리에 미숙하고 진리를 비틀고 교회를 허물어내어 양성적으로 또 음성적으로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고 있다.
이 책은 현장 목회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이 어려운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이단 대처 실용서는 아니다. 이단이 무엇인지, 그것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고전적인 이단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단은 지금도 영향을 계속 미치고 있는지 하는 문제를 다룬다. 학문적인 책에 더 가깝기는 하지만 이단에 관하여 이만큼 깊이 논의한 책도 우리 주변에서 만나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초대 교회에서 이단은 어떤 것이었는가. 그 특징은 어떠했는가. 이단은 교회 안에서 발생하였다. 교회 밖에서 발생하여 교회 안으로 들어온 게 아니다. 이단이 어떻게 교회 안에서 발생할 수 있었다는 것인가. 이 말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신약성경 전체가 그때는 아직 정경으로 확정되지 아니한 교회 현실과도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복음서는 복음 진리를 주로 이야기 형식으로 진술하고 있고, 서신서들은 편지 형식으로 진술하며, 요한계시록은 그것을 직접 드러내는 방식이 아닌 무엇에 빗대어 감춘 묵시 형식으로 진술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성경의 진리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처럼 교리 형식으로 진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초기 교회 안에서 이런 형식으로 된 성경을 읽고 설교하고 듣고 살피는 가운데 생겼던 어려움은 해석의 문제였다. 어떤 특정 주제를 놓고 서로 해석을 달리하는 견해들이 팽팽히 맞섰던 것이다.
초기 교회 역사를 통해 이단으로 정죄된 경우를 보면 이단은 성경의 진리를 개념화하는 과정에서 성경을 이탈하여 이성 중심으로 논리의 엄밀성을 추구하다 진리를 왜곡하거나 훼손한 경우가 많다. 이단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 주제를 특정 방식으로 정립하려고 시도를 하였지만, 조만간 교회는 그 방식이 위험할 정도로 부적절하거나 파괴적인 것임을 알아채었다.
요사이 우리 주변을 보면 교리 공부를 하는 교회나 단체가 늘고 있다. 고무적이고 반가운 현상이다. 하지만 그것의 한 그늘은 교리 공부가 이단을 막아 줄 주요한 수단쯤으로 여긴다면 문제다. 교리 공부가 교인의 성숙보다는 교인 이탈 방지 수단으로 사용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생기는 부작용은 신앙의 성숙이 아닌 신앙의 경색이 일어날 수 있어서다. 성숙성이란 유연성과 생명을 특징으로 갖지만 경색이란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판단성을 두드러진 특성으로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팔구십 년대에 허락된 급속한 교회 성장 끝물에 우리가 서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교회에는 어린이들이 많지 않다. 젊은이들도 삶의 비전을 갖지 못한 채 취업이나 쾌락을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스펙 쌓기는 육신의 생명에 도움을 주고, 스포츠와 대중음악과 영화가 제시하는 짜릿한 감각적 즐거움은 영혼에 생수를 공급하지 못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삶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학생 복음 단체의 변신도 요청된다 하겠다.
이제 난 젊은이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