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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폴비슬리 머레이 지음/정옥배 옮김/신국판/382면/IVP/2004.3발행

어느 날 출근해서 신문을 펼쳤는데 <부활>(The Message of the 
Resurrection, 2000)이라는 최신간 책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당장 수첩에 서
지 정보를 메모하고 며칠 후 서점에 나가 그 책만 사들고 돌아왔다. 

사실 부활에 관한 서책이 우리 기독교 출판계에는 절대 빈곤한 현실이다. 신
앙 실용 서적은 넘실대는데 정작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부활은 외면 당하
다고 있다. 주객의 전도요 젯밥에 마음 빼앗긴 냄새나는 장면이다. 예수의 부
활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당장 짚어볼 대목이다. 하여, 이 책을 펴낸 IVP에 열
렬히 박수를 보내며 치하하고 내심으로 기뻐한다.

폴 비슬리 머레이(Paul Beasley-Murray)는 한때 선교사였고 지금은 목사요 신
약학자이기도 하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하고, 맨체스터대학에서 신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부친 조지 비슬리 머레이도 신약학자이
며 is Alive>(1947)와 (1964)라는 책도 저술했다. 이런 
책들이 나온 시기를 보면, 불트만이 예수의 부활은 신화다고 폄하하고 깔아뭉
갠 학문적으로 정말 힘들었던 상황이다. 그런데 이 두 부자는 대를 이어가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보(家寶)처럼 세상에 자랑한다. 믿음의 훌륭한 가문이
다.

<부활>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예수님의 부활은 신약의 핵심 메시지
다.” 이 “부활의 메시지가 신약 모든 부분에 스며 있다”(21쪽). 이렇게 주장
하면서 중요한 주제들을 명확히 보여준다. 예수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다. 예
수 부활은 신자의 현재적 삶에 큰 능력으로 작용도 하고 미래의 소망이기도 
하다. 부활은 그리스도를 만천하의 주님으로 드러나게 한 하나님의 능력의 표
현이다. 지은이의 이러한 주장은 부활의 메시지가 약화되어 서구 교회의 결핍
을 가져왔다는 반성에서 시작되었다. 

본서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해당 부활 본문을 선정해 차근차근 강해해 나간다
는 점이다. 먼저 4 복음서에 기록된 빈 무덤과 부활하신 예수님의 출현 본문
들을 강해한다(1-4장). 바울과 다른 사도들
의 증거도 다룬다(5-6장). 성경에 
나오는 초대교회가 사용한 찬송, 신조, 신앙고백에 나타난 예수 부활의 증거
도 다룬다(7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20세기 중반부터 예수 부활을 놓고 격전
을 치른 양대 진영 신학자들도 간략히 언급한다(8장). 하지만 우리는 그 중심
부에 있지 아니한 어린 교회여서 그 대결을 멀리서 구경하거나 거드는 정도였
다. 그것도 우리에게는 벅찬 일이었으리라!

예수 부활 이전에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
한 베드로였지만 그런 그의 믿음은 계집종 앞에서조차 처참히 무너진다. 순
간 목숨이 아까웠던 것이다. 반면 예수 부활 후 그의 믿음은 요지부동한다. 
예수를 죽음으로 몰고 간 종교최고재판소인 공회의 위협 앞에서조차 두려움
은 싹 가신다. 이런 백팔십도의 급변에 사람들은 당혹해 한다. 특히 20세기 
중엽에 루돌프 불트만 같은 학자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예수 부활을 초
대교회의 산물로 깎아 내리고 신화(神話)라는 말로 그 당혹감을 감추려 한
다. 여기에 편승해서 예수 부활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교회도 신학자도 서구에
서는 덩달아 일어났다. 


론 우리는 베드로 사도의 그런 담력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그 답은 다 안
다. 예수의 부활이다. 부활의 주님을 친히 목격한 그는 오순절날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고 담대히 선포한다. 부
활이 그런 큰 확신에 이르게 한 것이다. 그리고 사도들의 선포는 항상 그리스
도의 부활이 그 중심에 있었다. 우리처럼 부활절에나 전하는 절기용 주제가 
결코 아니었다. 이 점이 초대교회와 우리가 판연히 구별되는 장면이다.

예수 부활은 이 땅에서 사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그리
스도의 빛이라는 보배를 질그릇에 담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보배는 자신
을 못났다고 생각하는, 질그릇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간직할 수 있다. 예수
의 부활은 고난 한가운데서 더욱 빛나는 능력이라고 한다(201-209쪽). 지은이
의 이런 고찰에 내 마음이 더 끌렸다.

마틴 루터 선생의 이야기도 들어보자. “나는 잠자리에 들 것이다. 그리고 천
사가 내 무덤을 두드리면서 ‘일어날 시간입니다. 루터 박사님! 심판 날이에
요!’라고 말할 때까지 아무것도 더 알지 못할 것이다”(235쪽). 이토록 
심리적
으로 안정되고 편안하게 한 능력이 과연 어디에 있었는가? 이제 책을 펴서 
그 해답을 찾아보는 수고 정도는 독자의 몫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