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하나님의 눈앞에서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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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눈앞에서 사는 사람들

김영규 목사
·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미국에서 1990년대에 이미 가정용 전기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꿈의 발전기
(Sundance Generator, 30KW 발전 용량)가 Dennis Lee에 의해서 발표된 이래 
아직도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비밀가운데 있는 경우와 달리, 1950년대와 
1960년대이래 세계가 경쟁하고 있는 꿈의 청정에너지로 알려진 핵융합에너
지 개발이 상업화할 수 있는 단계의 놀라운 개발 내용이 2006년에 처음 발표
되었다. 
이 발표는 한국의 토카막(K-STAR)이나 국제 열 핵융합 실험로(ITER)의 개발
에 의해서 추진되고 있는 자장 밀폐 핵융합방식이 아닌 관성 밀폐 핵융합방
식에 의한 핵융합 에너지 개발의 성공에 관한 것이지만, 중수소와 삼중수소 
혹은 헬륨-3을 연료로 사용함으로 인한 중성자나 양성자의 방출이 없이 오
직 헬륨-4만을 남기는 청정에너지 개발(p/H-boron11 fusion reactor)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더 관심이 되고 있다. 
과거 
영국에서의 거대한 핵융합 실험로(JET)에서 17메가와트를 얻었어도 환
경문제가 뒤따르지만, 현재 2-3m의 핵융합기기에서 100메가와트의 청정 전기
에너지를 발생할 수 있다고 하니, 조만 간에 그 기술에 따른 소형뿐만 아니
라 대형 핵 융합로들이 우주여행이나 생활의 에너지 자원으로 직접 이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논란이 되고 있는 기포 핵융합 기술이나 이 칼럼의 글에서 이미 언급한 다
른 싼 핵융합 실험 내용은 상업화의 길까지 아직 멀다. 그런 만큼 상업화 수
준에까지 이른 핵융합 기술은 인류의 미래 에너지 자원으로서 의미가 크다
고 할 수 있다. 

속속 이루어지는 놀라운 발명들

그런데 이런 개발 과정에서 보면, 개발 지원이 끊어졌을 때에도 그 개발자
(Dr. Robert W. Bussard)는 그 실험에 성공하였다는 점이다. 문제는 참으로 
원자력 발전보다 더 큰 모든 인류의 에너지 자원이 될 개발 내용이 홀대받았
다는데 있지 않고 거의 모든 일상 생활에서 부정할 수 없는 자연의 진실 자
체가 홀대받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태양이란 존재 자
체가 얼마나 신비로운 진실인지를 무시한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지만 한 구석에서 오늘도 우주나 물질의 마지막 신비를 풀
기 위해서 가정된 물질입자들(Higgs bosons, charminos, sfermions)이나 중
력입자들을 찾기 위해서 고에너지의 광자들을 충돌시키고 있고 고에너지 양
전자와 음전자들을 충돌시키고 있다. 
자연의 진실을 아는 것과 그리스도를 믿는 일은 분리되지 않는다. 구원자 하
나님을 믿는 일은 창조자 하나님을 믿는 일에 그 안식의 자리가 있다. 필자
는 이미 강조하였다. 한 사실에 의해서 모든 사실들이 파괴될 때 그 마지막 
사실이 모든 사실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서 역사 속에 뿌려진 일상용어들은 모든 진정한 사실들의 영원한 경계선이라
고 했다. 물론 거기에 개방성과 폐쇄성이란 문제가 있다. 

사람은 단순히 ‘보는 자’일 뿐

A. Turing의 모델에 따라 자연은 반응-확신모델(reaction-diffusion model)
에 의해서 잘 구현이 된다. 우리가 보는 시각 현상이 그런 모델로 재구성될 
때 자연스럽게 재생된다는 말이지만, 실제로 우리의 몸의 분자들이 구성되
어 가는 과정에서도 그런 모델이 자연스럽다는 것도 최근에 증명이 되고 있

다. 그렇다면 왜 그런 모델로 성장하여 정지되어 있는 나 자신이 마치 밖에 
운동하는 것들을 보는 자로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의 대상들은 모두 밋밋하다. 우리가 벽에 페인트를 칠하지만 그 물질들
의 표면으로부터 특별한 파장을 가진 다양한 운동들이 우리의 뇌에까지 영향
을 끼쳐 그런 외부 광자들의 운동들은 눈의 전 구조뿐만 아니라 뇌의 여러 
단계의 시상피질들을 통하여 하나로 일체가 되어 아름답게 대상들을 보고 있
는 것이다. 
한 세포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외부에서 생명의 인자들로 말미암
아 명령을 받아 자랄 때, 뇌와 우리 지각들의 정보망을 처음부터 필요로 하
는 완전한 자로서 거기 서 있다고 하였다. 어머니의 세포와 어린 생명의 세
포 사이에 경계선이 애매하듯이 그 명령도 육체와 영혼 사이의 경계선에 있
으면서 관찰될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인자로 존재하고 있다. 
이런 형식은 우리는 보고 느끼는 대상들과 다른 형식이다. 즉 외부에 대해
서 열려져 있다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정보를 필요로 하는 자로 개방되어 있
지만, 정보가 안으로 들어오는 회로에서 정보들이 들어와 흩어지는 폐쇄성
을 가지고 있
다. 우리가 서 있는 땅은 우리 앞에 수평선을 넘어 사방 무한
한 수로 펼쳐져 있고 아무리 멀리 달려도 영원히 자신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
는 폐쇄성 안에 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은 우리가 폐쇄되는 한 큰 형식이
다. 
우리가 아무리 멀리 날아가도 우주는 보이는 것으로 있고 아무리 작은 세계
로 쪼개어 들어가도 왜 우리가 보는 자로 있는지가 풀리지 않는다. 우주를 
우리가 보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은 보시고 기뻐하시는 창조자 하나님 앞에 우
주를 창조하시사 그런 보시는 형식을 우리의 존재가 그런 형식을 입도록 하
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자연에 축약된 차원들을 모두 정보로써 우리 안에 환원시킬 수 있는 
능력을 근원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 자체나 자연 그리고 모든 역사
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형식들로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