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죽이고 나서_이은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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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죽이고 나서

이은상 목사/ 동락교회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가 저자로 알려진 ‘농가월령가’를 참고해보면 우리
나라의 7월은 김매기, 피 고르기, 두렁깍기, 풀먹여 다듬기, 장마 지난 곡식
·의복 말리기 등 매우 바쁜 절기였습니다. 그러나 근대화 이후 농경생활중심
에서 벗어난 한국인들에게는 때아닌 뭉치시간이 던져지고 있습니다. 이제 ‘어
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놀 것인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
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세상에 여름휴가는 
일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특별히 경제적으로는 많이 부
유해졌지만 시간에 관해서는 아직도 가난뱅이들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휴
가는 대자연의 고요함과 가족의 깊음 등 일반은총의 진정한 가치를 소리 없
이 받을 수 있는 은혜의 장입니다. 특히 스피드에 열광하는 현대사회나 급성
장에 목숨을 거는 한국교회에게 휴가는 분명 내적 템포를 맞추는 쉼표입니
r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휴가는 그 목적을 상실한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잔소리 섞인 광고시간이 설교시간보다 더 긴 예배에 참여한 것처럼 지
루하고 의미 없는 휴가를 보내기도 합니다. 극심한 교통정체현상이나 피서지
에서의 바가지요금, 여기에다 날씨까지 쿵짝이 맞지 않으면 안식은커녕 속된 
말처럼 ‘시간 죽이기’일 뿐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휴가의 내용이나 계획보다 휴가 이후에 더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월드컵이 끝났을 때 그 열기를 발전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것, 또한 잔치 
뒤에 찾아오는 공허감을 빨리 벗어나는 것이 문제인 것처럼 마찬가지로 휴가
를 통한 정신적 영적 재충전, 그리고 그 이후 찾아오는 영적 무력감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휴가 이후에 꼭 성
경의 처방전을 받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주부는 쇼핑을 나서기 
전 미리 살 물건을 쪽지에 적어갑니다. 그것은 장을 보는데 감정이나 안목의 
정욕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즉 충동구매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입니다. 그
러나 더욱 지혜로운 주부는 쇼핑 이후에 영수증을 꼭 확인합니다. 
그것은 물
건값을 점검하기도 하지만 돈을 주관적이지 않고 객관적으로 사용했나를 점검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곧 돈이라면 우리는 지혜로운 주부처럼 휴가사용에 대
한 영수증목록을 점검해보아야 합니다(엡5:15-16). 

먼저 지혜롭게 휴가활용을 했습니까? 여기서 지혜란 단순하게 지식이나 능력
이 아니라 참된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하는 판단력을 말합니다. 휴가기간동안 
욕망이나 충동에 의해서 행동하지 않았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자세
히 주의하여 시간을 활용했습니까? 지혜로운 자의 특징은 신중하게 행동한다
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어떤 함정은 없는지 살펴봅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휴가기간동안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는지 묻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세월을 아꼈습니까? 세월을 아낀다는 것
은 단순한 숫자적 시간(time)이 아니라 기회(chance)를 의미합니다. 이 악한 
세상에서 주어진 짧은 인생의 나머지를 어떻게 기회를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휴가
는 시간을 죽이는 여흥문화
가 되어서는 안되고 시간을 살리는 생명의 문화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
가시간이라도 전도의 기회, 기도의 기회, 말씀을 읽는 기회로 만들 수 있다
는 것입니다. 

‘삿갓에 대롱이 입고 세우중에 호미메고/ 산전을 훗매다가 녹음에 누웠더니/ 
목동이 우양을 몰아다가 잠든 나를 깨운다(김굉필)’ 녹음이 있으면 우양도 있
고 누움이 있으면 깨움도 있고 쉼이 있으면 후에 일이 있는 것입니다. 광야 
길에 엘림(출15장)이 있고 그 곳을 지나 신광야와 시내산 그리고 가나안이 있
습니다. 엘리야에게 로뎀나무가 있고 그 후 기름 붓는 일이 있습니다(왕상19
장). 휴가 이후에 또 다른 기회들이 오고 있습니다. 기회를 죽이지 말고 포착
할 준비를 합시다. 경작의 발걸음을 재촉해봅시다. 재 넘어 사래 긴 밭으로 
달려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