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과학보다 ‘죄’ 문제 인식 앞서야
송영찬 국장
21세기를 대표하는 단어가 있다면 ‘인간 복제’ 또는 ‘인조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1990년대를 주름잡았던 싸이버 세상의 네티즌(Netizen)
의 뒤를 이어 우리에게 성큼 다가와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교회의 자세가
새로워져야 할 것이다.
지난해에는 사람의 유전자 지도가 해독되었다고 해서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이제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언제든지 필요한 만큼의 인간의 장기까지도 생산
할 수 있는 여건까지 갖추게 된 것이다. 또한 컴퓨터의 발전으로 얼마 전에
는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 강아지가 등장했다. 인공 지능을 갖춘 로봇 인형에
유전자 공학으로 설계한 장기를 이식한 ‘인조 인간’의 탄생은 결코 멀지 않
은 일이 되고 만 것이다.
이미 1982년에 제작된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는 ‘복제 인간’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복제 인간’은 ‘인조 인간’과는 달리 순전히 유전
자 공학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훨씬 쉽게 우리 앞
에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비록 ‘인조 인간’과 ‘복제 인간’은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할지라
도 첨단 과학과 유전자 공학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말 어떤 목적이든지 인간 복제를 하지 못하도록 법으
로 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인간의 특정한 부위의 장기만을 얻을
목적으로 유전자 배아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가 첨단 유전
공학을 향해 치닫고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유전자 배아를 금지한다는
것은 첨단 유전 공학에 뒤떨어지는 정책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는 유전자 공학이나 첨단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이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질병의 원인중의 하나는 ‘죄’이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인류는 늘
‘죄’의 부패성에 오염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죄’는 자연까지도 인류에
게 적대시하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때문에 사람이 섭취하는 모든 음식물까
지도 독성이 있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게 된 것이다.
질병은 범죄
한 인류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당연한 형벌이다. 그리고 결국 사
람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은 오직 단 한 번의 인생을 영유할 수 있으며,
그 살아 있는 기간 안에 구원받을 기회도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주어진 삶
의 기간 동안에 자신의 생명첨단 과학보다 ‘죄’ 문제 인식 앞서야을 소중하
게 간직해야 하며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신체의 각 부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최선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유의해야
한다.
반면에 삶에 대해 무관심하고 질병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으며 자
기 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으면서 건강하기를 기대한다
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연법칙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그 결과 질병이
발병하고 일부 장기를 잃은 경우 새 것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질병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미 발생한 질병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우리는 인간의 죄 문제
를 더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죄에 대한 회개와 해결 없이 단순히 질병
의 문제만을
다룬다는 것은 생명의 준엄성보다는 인간을 하나의 유기적 생명
체로 단순화하는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이런 잘못된 생각 때문에 ‘인조
인간’이나 ‘복제 인간’이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다.
얼마든지 사람의 장기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것으로 결코 인류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생명을 연장한다는 차원에서 조금은 유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발생할 부작용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우리는 중시
한다.
기독교에서 죽음은 부활을 소망하는 것으로 타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멸절
이 아닌 것이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 후에 있을 하나님의 엄중
한 심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살아 생전에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 자신
의 생각으로 자신만을 위해 살아 왔다면 그 후에 당연히 하나님의 심판을 받
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다.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노력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
할는지 우리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두려워하
지 않는다. 한 평생을 하나님 앞
에서 살고 세상 앞에서 당당하게 살아 온 성
도라면 죽음을 앞에 두고 결코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막대한 인력과 연구비의 투자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먼저 인식시켜야 할 것을 주장한
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살던 사람에게 불의의 사고로 인해 최선의 의료 서비
스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라도 질병
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명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거두시는 분 역시 하나님이라
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겸허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때로는 질병
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 자신의 죄악의 결과임을 고백
하고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실 것을 소망한다. 첨단 과학이나 유전자 공학이
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실 때에 비로소 참 빛을 발휘하는 것
이다. 하나님을 떠난 학문이나 과학은 결국 바벨탑과 같이 인류에게 분열과
혼돈과 고통만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