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노 이야기 36] 볼테르의 변호_프랑스 위그노 연...

볼테르의 변호 루이 14세는 자녀들보다 오래 살았기 때문에 손자 루이 15세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루이 15세가 겨우 다섯 살 나이로 왕위에 올랐을 때쯤 고개를 들기 시작한 프랑스 계몽주의는 그의 재위 기간과 더불어 점차 무르익더니 통치를 마칠 시점에는 마침내 절정에 달하였다. 아직 위그노에 대한 종교적인 편견은 지속되었지만, 당시의 지성인들에게는 인간 ...

[위그노 이야기 35] 까미자르 전쟁_프랑스 위그노 연...

까미자르 전쟁 프랑스 위그노 연구소 제공 (대표 : 조병수 박사)   위그노들은 루이 14세의 낭뜨 철회 이후 20년 동안 강화된 온갖 모진 박해에 대항하여 무력 저항을 전개하였다. 낭뜨 철회 이후 신교에 대한 박해가 강화되어, 위그노 교회의 공식 예배와 개인 성경읽기가 엄격하게 금지되었고, 교회당들은 무너지고, 위그노 마을이 약탈당했다....

[위그노 이야기 34] 광야집회_프랑스 위그노 연구소

광야집회 프랑스 위그노 연구소 (대표 : 조병수 박사)   루이 14세가 절대왕정의 권력을 거머쥔 이후 해외로 피난하지 못하고 프랑스에 남은 신교 신자들은 여러 모양새를 나타냈다. 달콤한 회유와 쓰라린 압박을 못 이긴 사람들은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가 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낮에는 구교 신자로 살고 밤에는 신교 신자로 사는 이중생활로 만족하였다...

[위그노 이야기 33]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 프랑스 위그노 연구소 (대표 : 조병수 박사)   절대왕정을 추구한 루이 14세는 용기병을 창설하여 위그노를 대대적으로 박해하였다. 위그노들은 재산을 몰수당하거나 신분을 박탈당하였고, 감금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남자의 경우에는 갤리선에서 쇠사슬에 매여 노를 젓는 중형을 받기도 하였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교의 길을 갔다...

[위그노 이야기 32] 용기병의 만행_프랑스 위그노 연...

용기병의 만행 앙리 4세의 손자 루이 14세는 다섯 살에 왕이 되었다. 어린 왕이기에 모후 오스트리아의 안느가 섭정을 맡았고, 이탈리아 추기경 마자랭이 재상으로 위세를 떨쳤다. 루이는 23살이 되던 해에 마자랭이 사망하자 독자적인 통치를 펼치기 시작하였다. ‘태양 왕’(Roi Soleil)으로 불리는 루이는 절대왕정을 꿈꾸며 ‘한 신앙, 한 헌법, 한 국...

[위그노 이야기 31] 라로쉘 함락_프랑스 위그노 연구...

라로쉘 함락 루이13세의 즉위는 납덩어리처럼 위그노를 누르는 것을 의미했다. 가톨릭 어머니에게서 자라난 루이는 추기경 리슐리외를 재상으로 기용하여 부왕 앙리4세와 달리 위그노를 박해하는 쪽에 섰다. 루이의 가톨릭 통치에 부딪힌 위그노는 저항과 투쟁에 돌입했고 영국과 같은 프랑스의 적국들과 연합을 추구하였다. 이런 현상을 지켜본 리슐리외는 위그노의 정치력과...

[위그노 이야기 30] 사건과 함께: 낭뜨 칙령_프랑스...

사건과 함께: 낭뜨 칙령 프랑스 위그노 연구소 (대표 : 조병수 박사)   앙리4세가 공식적으로 위그노 신앙을 철회하고 가톨릭으로 돌아간 사건(1593년)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목숨을 걸고 지지하던 많은 위그노들에게 크나큰 분노를 샀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은 시인이자 군인이었고 문예가이자 정치가이었던 도비녜이다. 도비녜는 앙리4세의...

[위그노 이야기 29] 사건과 함께: 앙리4세의 승리_...

사건과 함께: 앙리4세의 승리 ‘세 앙리의 전쟁’은 가톨릭 지도자 앙리 기즈의 피살에 이어 국왕 앙리3세가 피살되자 위그노 총수 앙리 나바르만 남음으로써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왕위 계승법에 따라 앙리4세로 왕좌에 올랐지만, 가톨릭 세력은 위그노 왕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고작해야 남프랑스의 몇 도시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앙리4세는 노르망디에서 영국의 ...

[위그노 이야기 28] 사건과 함께: 세 앙리의 전쟁

사건과 함께: 세 앙리의 전쟁 역사가 얄궂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비슷한 또래의 정치 수장이 각축전을 벌린 “세 앙리의 전쟁”은 역사의 얄궂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바뗄레미 대학살(1572년) 이후 프랑스의 정세는 판도가 급격하게 달라졌다. 이른 바 세 명의 앙리(Henri) 시대가 열린 것이다. 첫째 앙리는 국왕 앙...

[위그노 이야기 27] 사건과 함께: 꼴리뉘의 피살

사건과 함께: 꼴리뉘의 피살 파리 루브르교회 꼴리뉘 기념상   자정을 넘긴지 얼마 안 되는 새벽에 꼴리뉘의 침실에 자객들이 들이닥쳤다.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원근에서 다급하게 들려오는 비명소리들이 꼴리뉘의 귀를 찔렀다. “당신이 꼴리뉘인가?” 물으며 가슴팍에 칼을 겨눈 자는 붉은 머리라고 불리는 보헤미아 출신이었다. 꼴리뉘(Ga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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