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신부 _정승진목사
-새해의 신부
정승진목사/시인
천년의 새 문을 열고
새해의 검붉은 태양을 끌어올리시며
여전히 변함없는 이름으로
다가오시는 당신이여!
새 천년 새해에는
그대 눈동자이고 싶어
그대 살이고
그대 피이고 싶어
탁한 눈동자였기에
정결하지 못한 손발이었기에
쭈그러지고 찢어진 심장이었기에
우슬초로도 아니되었던
지나온 날들을…
그...
개혁에 화합과 희생정신 필요 _장경재 목사
개혁에 화합과 희생정신 필요
장경재 목사
새 천년을 맞는 우리 개혁교단의 비전은 무엇인가? 그것은 역시 삼대 이념
이라고 생각된다. 첫째는 바른 신학 운동이요, 둘째는 바른 교회 운동이요,
셋째는 바른 생활 운동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 안에 바른 신학 운동을 일으키기 위하여 1980년 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를 설립케 하시고 지금까지 ...
미래 지도자 양육에 투자해야 _박봉규 총회총무
미래 지도자 양육에 투자해야
박봉규 총회총무
저물어 가는 20세기를 정의하기를 예일대학의 사학자 헥스터(J. H.
Hexter)는 ‘혼돈의 시대,’ 하버드대학의 사회학자 소로킨(Pitrim
Sorokin)은 ‘위기의 시대,’ 영국의 시인 오덴(W. H. Auden)은 ‘불안
의 시대,’ 미국의 경영학자 드러커(Peter Drucker)는 ‘불연...
파루시아 준비하는 원년이길 _강경민 목사
파루시아 준비하는 원년이길
강경민 목사
변하는 것들 가운데서도 변치 않는 것이 있고, 변치 않고 있는 것들 가운
데 반드시 변해야만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참된 지혜이다. 새 천
년이 돌아온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2000년
1월 1일의 태양이나 1999년 12월 12일의 태양이나 매양 한 가지임에 틀림
...
본질적인 의식변화 추구해야 _윤석희 목사
본질적인 의식변화 추구해야
윤석희 목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받았다. 피조물의 면류관인 인간에
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이 죄로 인해 이즈러지고 깨어졌다. 역사의 변천과
더불어 발전한 문화는 더 발전적이지 못하고, 악해지고 타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여러번 받았다. 노아시대의 홍수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21세기와 교회_안만수 목사
21세기와 교회
안만수(화평교회 담임목사)
미국의 미래학자 다니엘 벨(Daniel Bell)은 21세기가 첨단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류에게 새로운 발전과 가능성을 줄 후기 산업사회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 시대는 어떠한 특징을 가질까? 이 시대는 무엇보다도 컴퓨터의
대량 보급으로 정보의 혁명이 가속화될 것이다. 유전 공학의 발달로 식량...
좁은 길 걸어가는 교회 되어야 _남웅기 목사
좁은 길 걸어가는 교회 되어야
남웅기 목사
이제 며칠 있으면 새 천년 시대가 도래한다. 10년도 100년도 아닌 천년의
전환기에서 사람들은 제마다 기대에 부풀어 있다. 날은 똑같은 날이지만
사람들은 천년을 단위로 카운트 하기를 즐긴다. 내일에 대한 간절한 소망
이 빚어내는 기대적 심리인 것 같다. 새 천년은 놀랄만한 변화를 동반할
것이다. 과...
교회는 세속적 욕망 제어해야 _서요한 교수
교회는 세속적 욕망 제어해야
서요한 교수
세계는 지금 뉴 밀레니엄, 새 천년에 대한 기대감으로 온통 야단이다. 우리
나라도 12월 31일 성대한 새 천년을 맞는 행사를 광화문에서 열 계획이다.
천년을 보내고 새 천년을 맞는 것이 이 시대 우리들의 특권일진데, 그 중
에서도 의미가 남다를 우리 교회는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가?
직시할 것은 새 ...
정체성 명확하게 드러내어야 _엄원규 목사
정체성 명확하게 드러내어야
엄원규 목사
1999년이 지나면 대망의 21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이 온다. 새로운 세기
2000년은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가 예상되고 있다.
20세기 말엽에 우리는 기독교 선교 100주년의 한국 교회, 세계교회사에 초
고속 성장기록을 세운 한국 교회, 전 인구의 25%에 해당하는 1천200만의
교인 ...
교회는 구원의 선포 기관이어야 _정중렬 장로
교회는 구원의 선포 기관이어야
정중렬 장로
예수라는 단어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또는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이 태어나시던 당시의 문헌들을 보면 이 ‘예수’라
는 이름이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이름이 가지고 있는 메시아적
성격 즉 ‘여호와여 구원하소서’라는 기대감이나 ‘여호와는 구원이시
다’라는 시대적인 요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