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독교의 적
기독교의 적
명암이 늘 공존하듯이 기독교에는 시작부터 다양한 적들이 나란히 존재하였다. 이런 적들은 어둠, 가라지, 늑대, 삯꾼, 거짓 선지자, 미혹의 영 등 여러 메타포로 불린다. 어떤 식으로 표현하든지 복음과 진리를 희석시키고 혼란스럽게 만들어 변질시키고 파괴하려는 적들이다. 이들은 선지자들을 비롯하여 예수님과 사도들에게 빠짐없이 경고의 대상이 되었고...
[사설] 제108회 총회에 거는 기대
제108회 총회에 거는 기대
우리 교단 제108회 총회가 이제 10여 일 후에 열린다. 전국 21개 노회에서 파송된 316명의 총대가 참석한다. 이번 총회가 우리 교단의 품격을 높이고 개혁교회로서의 위상을 견고히 세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번 총회에서 새로 임원을 선출한다. 친소관계나 대중심리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말고, 교단이 정한 법과 ...
[사설] 제108회 총회를 위한 제언
제108회 총회를 위한 제언
코앞으로 다가온 총회에 몇 가지 제언을 한다. 첫째로 집회에 관한 제언이다. 규모와 휴양이 자주 집회의 목적이 되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집회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과 심신을 쉬는 것을 위주로 기획되었다. 성대한 집회와 휴식의 집회를 나쁘다고 탓할 수 없다. 하지만 과시성의 단합대회는 기독교...
[사설] 성도의 찬송에 대하여
성도의 찬송에 대하여
성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벧전 1:3)라고 했다. 베드로는 수신자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할 것을 권고한다. 믿음이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계시와 이를 깨달아 신앙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전제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과 그분께서 행하신 일들 속에 비추이는 하나님의...
[사설] 여름 집중교육을 앞두고
여름 집중교육을 앞두고
지금은 집중교육의 계절이다. 감염병 때문에 서너 해 연기해 오던, 성경학교와 수련회 같은 여름 집중교육 과정들이 대거로 준비되고 진행될 시점에 있다. 이 기회에 교회교육을 원칙적인 면에서 점검해보는 것이 좋겠다. 감염병 이전의 방식을 아무 비판 없이 그대로 채용하는 것도 한 방도이겠지만, 과연 그것이 옳았는지 재고해봄직하다는 말이다...
[사설] 기적 은사에 대한 성경적 인식
기적 은사에 대한 성경적 인식
사도 시대의 예배 정경을 통해 당시의 기적 은사는 교회에 보편적으로 적용되었다. 워필드에 의하면 당시 교회는 특징적으로 기적을 행하는 교회였고 심지어 기적 은사들이 예배의 정경을 이루었다. 따라서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면, 그것은 보편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이 보편적이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도들 이후 ...
[사설] 하나님은 당신의 “당신”이신가?
하나님은 당신의 “당신”이신가?
이따금 충격적인 기도문을 듣는다. 그것도 다름 아니라 공식적인 예배 중에 듣는 아연실색할 기도문이다. 밑도 끝도 없이, “봄입니다. 꽃잎이 알록달록 피어나고, 연녹색 새잎이 돋아나는 계절입니다”라는 말로 시작해서 끝까지 시를 읊조리는 듯한 낭만적 기도문이 있는가 하면, “나는 육이오 때 태어나 사일구를 거쳐 산업화의 시...
[사설] 선하고 덕스러운 교회의 권위
선하고 덕스러운 교회의 권위
장로교회는 장로들의 회(會)를 통해 성도들을 돌보고 목양하며 치리하는 교회 정치 제도를 가진다. 장로교 정치 제도는, “교회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교회의 머리는 오직 한 분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뿐이다”라는 신앙고백을 구현하기 위해 세워졌다. 장로교와 장로교가 가진 교회 통치 혹은 목양의 원리는, “교회의 주권이 ...
[사설] 엘리야가 없다
엘리야가 없다
연중에 하루라도 스승을 기리는 날이 있다는 것은 정말 잘된 일이다. 매일같이 밀려드는 크고 작은 일에 쫓기며 선생님의 은혜를 까맣게 잊고 살다가도 그 날이 다가오면 문득 머릿속에 선생님들의 모습이 안개처럼 뿌옇게 떠오른다. 그 모습들은 저 멀리 기억 속에 아스라이 숨어 있다가 스승의 날을 알리는 달력과 함께 활동사진이나 되듯이 꿈틀거리며...
[사설] 성도로서 마땅한 사랑의 삶
성도로서 마땅한 사랑의 삶
고린도전서 13장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주로 달콤한 사랑, 설레는 사랑, 목마른 사랑, 못 잊을 사랑에만 익숙한 우리로선 머쓱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나 장엄한 사랑의 찬가이기 때문이다.
이 본문이 가리키는 사랑은 물론 즐기는 사랑이 아니다. 그렇다고 성자들이 흔히 실천하는 나누는 사랑만도 아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