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113)
감 사 사도행전 5:40-41
< 정창균 목사_합신 총장_설교학 >
감사는 모든 삶의 현상에 의미를 주신
하나님을 절대 신뢰함이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감사는 특별한 현상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도 아닙니다. 어떤 특별한 현상이 주어지면 저절로 우러나와서 자동적으로 표현되는 기계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실 인생살이에 저절로 감사가 우러나올 만큼 신바람 나는 그런 경우는 그렇게 많지도 않습니다.
신앙인에게 감사는 감정의 열매가 아니라, 의지의 생산물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감사는 어떤 조건을 내건 흥정이 아닙니다. 만약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면 감사하겠다는 식이 아닙니다. 어떤 현상에 대한 반응도 아닙니다. 이렇게나 좋은 일이 일어났으니 감사하다는 식도 아닙니다. 신앙인에게 감사는 삶의 현장에서 직면하는 모든 현상에 담긴 의미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 의미 때문에 여전히 감사하겠다는 행위를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감사는 경우의 수가 아니고, 언제나 가능한 상수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결정하는 기준은 늘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나를 복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삶의 현장에 지금도 간여하시고 선하신 손길로 나를 이끄신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면 모든 것이 좋은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러한 종류의 신뢰입니다. 그리하여 삶의 현장에서 직면하는 우리의 모든 상황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금 처한 현실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근거로 우리는 드디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것은 감정의 움직임이 아니라 의지의 결단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근거와 이유가 분명해지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도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제 후배 목사의 처제는 40대 초반에 암에 걸려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젊은 집사님은 자신의 처지가 한없이 억울하고 원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투병하던 어느 날 깨끗한 봉투 하나를 준비하여 상당한 금액의 돈을 넣고 정성스럽게 봉투에 제목을 기록하여 감사헌금을 드렸습니다. 자기가 죽으면 치러질 자신의 장례식 감사 헌금을 드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그 집사님은 하나님께로 가셨습니다. 죽음이 감사할 리가 없으련만, 그 분은 진심과 편안함으로 감사헌금을 드렸습니다. 그 집사님은 하나님 안에서 죽는 자기 죽음의 의미를 확인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죽음이 억울함과 원통함 대신 진실한 감사를 내놓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를 일으켜 주었습니다. 인기절정에 이르고 하늘을 찌를 자신의 카리스마를 휘두를 수 있었을 그 기회를 그들은 철저하게 거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결정적인 기회로 삼았습니다. 복 받을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로 말미암아 두 차례나 체포되어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체포되었을 때는 다시는 예수를 전하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채찍질을 당하며 풀려났습니다. 그렇게 흠뻑 얻어맞고 풀려나는 두 사도가 취한 행동은 세상의 상식이나 경험으로 볼 때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기뻐하면서 자기를 채찍으로 후려친 무리를 떠납니다.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5:40-41). 그들이 그렇게 기뻐했다는 말은 사실은 감사했다는 말을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기뻐하고 감사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렇게 매를 맞았다는 사실이 갖고 있는 의미 때문이었습니다. 혹독하게 채찍질을 당하는 것이 기쁘고 감사할 인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들은 매 맞는 것이 재미있거나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매를 맞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그런 일도 당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인정을 해주셨다는 증거라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채찍이 아니라, 그 채찍의 의미에 관심을 집중한 것입니다.
두 아들이 처참하게 살해당한 현실은 이를 악물고 참을 수는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도 감사할 만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런 비극의 현장에서 아홉 가지나 들어가면서 감사의 제목을 찾아 내놓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바보가 아니라, 참된 신앙인이었습니다.
1. 나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이 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2.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서 어찌 이런 보배를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주께 감사합니다.
3. 삼남삼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을 바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4. 한 아들 순교도 귀하거든 하물며 두 아들이 함께 순교했으니 더욱 감사합니다.
5. 예수 믿다가 와석종신 (臥席終身)하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하였으니 주님께 감사합니다.
6. 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두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7. 내 아들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하는 마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8. 내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을 생각하니 감사합니다.
9. 이 같은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신애를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신앙인에게 감사할 이유는 언제나 있습니다. 때로는 거의 불가능할 만큼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통과해야 하지만, 선하신 하나님과 연관 지어 그 현실의 의미를 찾아 나서면 어느 덧 우리는 감사의 마음에 잠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