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총회 교직자 수양회 강설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로 강하여라
< 서문강 목사, 중심교회 >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게 된다
4. 은혜의 궁극적 승리 (롬 8:28-39)
우리가 이번 수양회를 통하여 다시 들었듯이,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어 영화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장엄한 목적이 반드시 이루어짐을 면면히 반복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우리가 가지는 ‘구원의 확신’은 우리의 열심과 신실함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은혜의 방식’으로 그 목적을 이루심에 근거한 것이다.
‘은혜’란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온 바와 같이 ‘주권적인 긍휼의 처사’이다. ‘우리의 죄와 부패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하고 엄정한 공의의 분노를 우리에게 쏟지 않으시고 아들이 대신 받게 하시고, 또 우리가 마땅하게 제출해야 하는 완전한 의를 아들이 대신 이루게 하시어 그 아들의 것을 우리의 것으로 여기시고, 그것의 효력을 성령님으로 적용하시고 그 안에서 우리를 영원히 서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사’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의 믿음도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어 단번에 주신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고 헌신하는 것은 그런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의 처사’에 대한 ‘마땅한 반응이다.’ 모세와 선지자들과 사도들 – 성경 전체를 통하여 – 은 ‘하나님의 그 은혜의 방식’을 무수히 반복적으로 선포하고 확인한다.
사도 바울은 여기 오늘 읽은 본문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얼마나 확실하게 이루어지며, 그 목적에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이 우리의 우리 됨에 불구하고 얼마나 확정적인지를 말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선을 이룬다’는 것은 우리가 보는 견지의 ‘선’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정하신 뜻을 이루시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의 경륜 속에서 ‘그 목적을 이루시는 데 방해가 아니라 합력한다’는 것이다. ‘섭리’란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을 이루어 나가시기 위해 모든 것을 주장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도는 바로 뒤이어 29-30절에서 그 점을 확인한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우리의 믿음이란 ‘우리의 됨됨이와 우리의 처지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향하신 그 완전하신 하나님과, 그 확정된 목적이 반드시 이루어져 우리가 그 뜻하신 영광에 이르게 됨에 자신을 던지는 것이다’. ‘소망’은 그 믿음으로 바라보며 그 목적이 우리의 영원한 현실로 될 날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조망이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히 11:1). 사도는 그런 하나님의 거룩하신 행사의 조명을 가지고 ‘믿는 우리가 지상 생애에서 만나는 현실로 돌아온다’. 우리는 하늘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나 몸을 입고 지상의 현실 속에 있다. 지상의 현실에 속하고 매몰된 사람은 아니나 여전히 ‘세상’이라는 환경 속에서 산다. 우리가 여기 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지만 오늘 바로 우리는 우리가 처한 ‘현실’로 회귀한다.
그럼 그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의 믿음의 싸움을 위한 지원병을 보내지 않고, 우리 믿음을 까부수려는 적군이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사도가 31절에서 말하는 것은 바로 그 현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사탄의 훼방이 있다.
우리의 연약과 허물을 그도 잘 알기에 늘 참소하고 우리를 조롱하고 우리를 우울하게 하려 벼른다. 신자들 중에 이런 일이 영적 침체의 큰 원인이 된다. 연약과 허물로 실족과 사탄의 참소가 있다. 그러나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우리의 현실이 그리 만만치가 않다. 어떤 때는 우리 앞에 절벽이 놓여 있고 도저히 그것을 넘어설 지혜도 힘도 없다. 스펄전과 같은 대 설교자는 마냥 행복한 것 같았어도 그의 현실은 늘 그를 찔러댔다. 통풍으로 인한 고통, 자신의 연약에 대한 자의식으로 인하여 우울증으로 인하여 목회를 접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를 모함하는 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이겨냈는가?
사도의 말을 들어 보자.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3:37). ‘은혜의 궁극적 승리이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 강하라”는 성령님의 권고를 듣고 거룩한 담대함으로 서게 하시는 은혜로 충만해지자. 우리 자신의 힘만 의지하면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의 원천이신 그리스도와 은혜의 효력을 따라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려고 은혜의 방편을 통해 은혜를 공급받을 때에 내 것이 아닌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게 된다’. 아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