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뜨락| 눈 내린 날의 추억_윤순열 사모

0
348

<은혜의 뜨락>

눈 내린 날의 추억  

< 윤순열 사모_ 서문교회 > 

 

740-6_3.jpg

주님의 은혜처럼 내려 쌓여 수묵화를 만들었던 흰 눈의 겨울  

 

   어릴 때는 눈이 오면 마냥 좋아서 온 들판을 뛰어 다녔지만 지금은 눈이 온 후에 일어날 일들 때문에 어린아이 같이 좋아 할 수만은 없습니다. 눈길에 혹시 나이 드신 성도님들이 교회 오시다가 넘어질까 염려가 되고 앞마당에 쌓이는 눈 치우는 것도 큰 일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연일 쌓이는 눈을 치우다가 팔의 인대가 늘어나 버렸습니다.

   새로운 예배당으로 이사 오기 전의 눈 내린 새벽이 생각납니다. 밤새 많은 눈이 내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상황이었지만 천천히 차를 운전하여 교회에 갔습니다. 눈 때문에 느릿느릿 도착한 탓에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흰 눈으로 뒤덮인 적막한 예배당 앞마당에는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눈만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눈 위에 고양이 발자국이 점. . 찍혀있었습니다. 신기 했습니다. 눈이 내린 날 밤은 주위가 조용해져서 그런지 아마 포근하게 잠이 더 깊이 드는 모양입니다. 사람들은 새벽잠에서 미처 깨지 못했는데 고양이가 먼저 예배당 길을 밟고 지나간 것입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잠을 자는 성도님들 대신 먼저 왔다간 고양이 발자국을 보면서 어떤 강사 목사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한 마을에 가까이 마주보고 있는 예배당 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겨울 눈 내리는 새벽, 한쪽 예배당에서는 새벽기도를 드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발자국들이 찍혀 있었고 다른 쪽 예배당에는 목사님 발자국 외에는 한 발자국도 보이지 않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발자국이 없는 그 교회 목사님은 맞은편 예배당을 의식하여 예배당 앞길에서 왔다갔다 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많은 사람이 새벽 기도회에 온 것처럼 연출을 하였다는 가슴 아픈 일화였습니다. 때로는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을 때가 있었기에 이제는 그분의 마음을 알 것도 같습니다.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어릴 적 추억이 또한 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 당시의 겨울은 왜 그리 추웠는지 눈이 오면 무릎까지 빠지는 일이 예사였습니다. 학교는 또 왜 그리 먼지 십리나 되었습니다. 먼 시골길을 장갑도 없이 얇은 옷 하나만 입은 채 덜덜덜 떨면서 학교에 다녔던 기억은 잊지 못할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겨울이면 손이 동상에 걸려 보랏빛으로 변하였습니다. 그 손을 호호 불면서 학교에 다녔던 기억은 안타까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나보다 세살 위인 언니도 나처럼 보랏빛으로 변한 손으로 겨울을 보냈습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엄마는 동상 걸린 손은 찬물에 담가야 얼음기가 빠진다는 민간요법대로 놋대야에 찬물을 떠와서 그 속에 나와 언니의 손을 담그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한 두 시간을 보내며 고문 아닌 고문을 받았던 일이 있습니다. 따뜻한 물도 아닌 찬물에 밤마다 두 손을 담그고 얼음기를 뺀다던 근거 없는 민간요법 때문에 우리는 더욱 춥고 괴로운 겨울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손이 아픈 우리를 향한 엄마의 지극한 사랑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오는 마음 짠한 기억들. 그래도 하얀 눈이 있어서 마냥 좋았던 어린 날의 겨울. 소나무 가지가 눈을 뒤집어 쓴 채 축 늘어진 모습이 아름다웠던 날들. 장독대에도 기와나 초가지붕에도 주님의 은혜처럼 소복소복 내려 쌓여 온 동네를 멋진 수묵화로 만들어 놓았던 그 흰 눈의 겨울이 다시 그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