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족함의 복_박완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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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족함의 복 

< 박완철 목사_ 남서울은혜교회, 동서울노회장 >

 

   ‘과유불급’. 너무 지나치면 오히려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최근 이보미라는 한국 여자프로골퍼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일본 여자프로골프 (JLPGA) 사상 처음으로 2년 연속 3관왕에 오른 대단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런데 한때 고비가 있었다.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지나쳐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했다. 성적이 자꾸 떨어질 때 어떤 팬이 건넨 말이 전환점이 되었단다. ‘필드에서 당신을 보는 것만 해도 행복해요. 그러니 성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그냥 즐기세요!’

   뭐든 잘해 보려는 욕심이 지나치면 역효과를 낳는다. 어떤 분야든 그렇다. 노래도 힘이 너무 들어가면 도리어 잘 안 된다. 음식도 과식하면 비만이지만 다이어트를 심하게 하다 거식증에 걸리기도 한다. 공부도 지나치면 온갖 스트레스에 몸이 상한다. 회사일도 사업도 심지어 목회도 마찬가지다. 성실한 건 좋지만 지나친 집착은 금물이다. 무리하지 않고 적정한 선을 지키는 것이 지혜다.

   문제는 연약한 인간인지라 그 경계선이 애매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자체로는 정당한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속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돈도 명예도 사람 살아가는데 필수 요소다. 누가 그 필요성을 부정하겠는가? 왕이나 대통령의 경우엔 권위도 필수적이다. 그런데 욕심이 지나치면 권력을 남용하는 안 좋은 리더로 전락하고 만다. 사람이 권위의 자리에 오르면 대개 두 종류로 나뉜다고 한다. 주어진 권력으로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 아니면 그 권력을 향유하는 사람이다.

   처음엔 잘하다가 중간에 넘어지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 주변에도 있고 성경에도 있다. 고생할 때는 겸손했고 없을 때는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그런데 안정되고 풍요로워지자 넘어지고 높아지니 넘어진다. 어려움이 사라지니까 방심하는 것이다. 다윗도 솔로몬도 그랬다. 권력과 물질과 쾌락이 너무 많아 넘어졌다. 하나님도 소명도 잊어버렸다. 대신 누리는데 관심을 집중했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범죄한 것이다. 가진 것을 적절히 활용하는 대신 거기에 휘둘리고 만 경우다. 그 결과 권력의 정점에서 날개 없는 추락을 시작하게 된다.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삼하 12:8). 나단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이 말씀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하나님 보실 때 현재상태가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욕심을 부렸고 경계선을 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지금보다 더 가지면 위험하다는 경고도 포함된다. 인간적으론 좋아 보여도 영적으로는 손해다. 더 가지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필히 마이너스다. 하지만 사람 욕심은 한번 동하면 멈추기 어렵다.

   다윗처럼 영성이 뛰어난 사람도 넘어지는 것을 보면 우리 모두 조심할 일이다. 뭐든지 많은 것이 꼭 복은 아니다. , 건강, 외모, 권력, 학벌, 지식, 은사, 인기 등. 없는 사람이 교만한 경우는 적다. 대개 있는 사람, 가진 사람이 더 교만해진다. 그래서 모자랄 때보다 풍성할 때가 오히려 위험하다. 세상 쾌락에 빠진 다윗은 선지자의 지적을 받을 때까지 거의 1년 간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했다. 이것저것 부족할 때는 하나님으로 만족을 삼았다. 그러나 세상의 것들을 많이 가졌을 때 하나님을 잃어버렸다. 세상 쾌락을 누리면서 하나님 없는 지옥을 산 셈이다.

   최근에 우리나라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교회 역시 오랫동안 휘청거리고 있다. 나라도 교회도 미래가 밝지 못하다. 모두 지나친 욕심 때문이다. 그렇다고 절망할 건 아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니까. 그리고 그 하나님은 역전의 명수이고 회복이 주특기인 분이시니까. 따라서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마지막 소망이다. 다만 전제가 있다. 나부터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나라도 교회도 다 사람이 문제다. 그러므로 사람이 달라지면 희망이 있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실까? 구약에 보면 말 잘하는 아론보다 말 못하는 모세를 사용하셨다. 신약에서는 웅변가인 아볼로보다 바울을 크게 쓰셨다. 모세는 자신감과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뒤로 자꾸 내빼는 사람이었다. 바울은 전승에 의하면 외모와 말솜씨가 늘 약점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둘 다 인간적인 매력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런 사람들을 선택하셨을까?

   두 사람 다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친밀도였다. 설교를 잘하는 것보다, 교회를 키우는 것보다, 더 많은 인기보다 목회자가 정말 사모할 것은 이것 아닐까? 가진 게 너무 많으면 거기에 자꾸 마음이 간다. 대신 인생에 한두 가지가 빠져 있으면 그 때문에 자꾸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다 가진 것보다는 조금 부족한 것이 복이다. 나머지 2%는 하나님의 몫이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그러므로 지나친 욕구보다 이제부터 내게 부족한 것들을 오히려 누려보면 어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