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신년기획 / 최근 세계 신학의 동향과 한국적 현황 <3>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해를 맞아 본보는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교수들을 통해 최근의 세계 신학의 동향을 알아보고 한국 신학계의 대응과 현황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편집자 주>
세계 역사신학의 동향
– 종교개혁사와 후기종교개혁사 연구를 중심으로–
< 안상혁 교수, 합신 역사신학>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를 맞아 필자는 세계 역사신학계의 동향을 특별히 16세기 종교개혁과 17세기 후기 종교개혁(Post-Reformation) 시기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I. 종교개혁 연구:
“다변화에서 통합으로”
1962년 독일 종교개혁사가 베른트 묄러(Bernd Moeller)의 ≪제국도시와 종교개혁 Reichsstadt und Reformation≫은 20세기 종교개혁사 연구에 있어 전환점을 마련한 저술로 알려져 있다. 묄러는 기존의 몇몇 인물중심과 교의적 관점의 종교개혁사 연구로부터 탈피하여 소위 사회사(social history)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주창하였다.
1960년대를 기점으로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종교개혁사 연구는 그 주제에 있어 매우 다변화되었다. 일례로 종교개혁의 수용, 대중신앙, 도시연구, 종교개혁과 경제, 사회통제, 대중매체(소책자와 이미지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결혼과 성, 가족, 교육 등의 주제로 연구 범위가 널리 확대되었다.
역사신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제국도시들의 입장에서 독일 종교개혁을 연구한 하버드 대학의 스티븐 오즈먼트(Steven Ozment)나 제네바 컨시스터리의 회의록을 심도 있게 연구하여 칼빈의 종교개혁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장시킨 미네소타 주립대학의 역사교수 로버트 킹던(Robert M. Kindgon)은 사회사와 교회사를 훌륭하게 접목시킨 대표적인 연구자들로 평가할 수 있다.
오늘날 일평생 성경을 연구하고 번역하고 가르치고 설교한
루터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시도
사실 묄러가 단순하게 채색해버린 20세기 중반까지의 종교개혁자 연구물 가운데에도 예일대학의 롤란드 베인턴의 ≪내가 여기 있나이다 Here I Stand≫와 같은 수작이 존재했다. 그러나 마크 놀이 옳게 지적한 바와 같이 기존의 루터 중심의 연구가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한 것도 사실이다.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로마 가톨릭 교회는 루터를 교회 분열의 괴수이며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또한 각 시기의 정치적이며 사상적 견해에 따라 루터의 이미지가 때로는 독일 민족의 영웅으로 혹은 부르주와 혁명을 이끈 투사로, 그리고 심지어는 독일 나찌와 히틀러의 직접적인 조상으로까지 제시되기도 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오늘날 일군의 연구자들이 일평생 성경을 연구하고 번역하고 가르치고 설교한 루터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시도이다. 이와 무관하지 않게 1990년대 이후로 종교개혁사 연구는 한편으로는 기존의 다변화된 연구 성과들을 통합적으로 서술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개혁사의 성경적, 신학적, 사상적 기초를 더욱 심도 있게 연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오고 있다.
각 대학의 종교개혁사 커리큘럼에서 후스토 L. 곤잘레스 혹은 카터 린드버그의 개론서와 더불어 헤이코 A. 오버만, 데이비드 스타인메츠, 데이비드 백치, 알리스터 맥그래스 등의 저서들이 교재로 선택되는 현실이 이러한 흐름을 잘 반영한다고 하겠다.
또한 금세기 들어 루터와 츠빙글리, 그리고 칼빈 이외의 다른 종교개혁자들에 관한 연구가 활성화된 것 역시 고무적인 일이다. 오늘날 우리는 부써, 멜랑히톤, 불링거, 외콜람파디우스 등과 같은 지도자들은 물론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요하네스 아 라스코, 피터 마터 버미글리, 볼프강 무스쿨루스, 안드레아스 히페리우스, 제롬 잔키 등에 대한 연구물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중세와 종교개혁 사이의 연속성/비연속성 논의는 종교개혁사 연구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핵심 쟁점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서는 후기 종교개혁 연구사 부분에서 소개하기로 한다.
2. 종교개혁과 후기 종교개혁:
“단절에서 연속으로”
위트레흐트 대학의 역사신학자 빌렘 반 아셀트는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에 대한 한 세기의 연구 동향을 “단절에서 연속으로”라는 한 마디로 요약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연구자들은 종교개혁과 후기 종교개혁 사이의 차이점에 주목했다. 종교개혁의 신학은 “말씀의 신학”과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인 반면 개혁파정통주의 신학은 “예정론 중심”과 “합리주의 신학”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바르트와 신정통주의 신학자들), 전자의 작정신학과 후자의 언약신학 사이의 대립각을 세우는 시도(페리 밀러)도 유행했다.
두 시기 사이의 단절성은 “칼빈주의자들에게 대항하는 칼빈” 테제에 의해 자극적으로 표현되었다. 단절을 강조하는 논의들의 공통된 요소는 개혁파정통주의 신학 안에 있는 스콜라주의적 요소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한편 20세기 후반부터 후기 종교개혁을 연구하는 일군의 학자들?위트레흐트의 아셀트,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칼 R. 트루먼, 그리고 칼빈 신학교의 리처드 A. 멀러 등?은 개신교 스콜라주의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했다. 그 결과 대다수의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들에게 스콜라주의란 일종의 신학방법론이었다는 사실을 잘 드러냈다.
종교개혁의 후예들은 종교개혁의 전통으로부터 일탈한 것이 아니라 보다 정교한 학문의 방법론을 수단으로 활용하여 오히려 종교개혁이 발견한 성경의 진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변증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사실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과 후기종교개혁의 연속성을 설명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넓게 보아 중세, 르네상스, 종교개혁, 후기종교개혁 시기 전체를 관통하여 흐르는 연속성/비연속성 논의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은 새로운 분파운동이 아니라
교회사의 어느 한 시점에서 상실되었던
초대교회의 공교회성을 회복하는 운동
20세기 중엽, 폴 O. 크리스텔러는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철학적 체계가 아니며 오히려 도구적 학문이며 문화적 프로그램임을 강조했다. 이와 무관하지 않게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중세 스콜라주의를 단순히 대체했다는 통념이 역사적 실재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한편 헤이코 오버만은 중세 말의 다양한 신학 전통과 그 가운데 종교개혁으로 계승된 요소들을 연구함을 통해 중세 말과 종교개혁 사이에 존재하는 연속성을 확인했다. 어떤 의미에서 리처드 멀러의 작업은 크리스텔러와 오버만의 시도를 16-17세기에 적용한 것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과장이 아닐 것이다.
중세와 종교개혁 그리고 종교개혁과 후기 종교개혁 사이의 연속성 논의에 있어 핵심쟁점은 “공교회성(catholicity)”이다. 오늘날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초대교회의 신학을 집대성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이 중세 말 아우구스티누스 연구의 새로운 부흥기를 통과하여 종교개혁으로 계승되었고 그것이 후기종교개혁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종교개혁은 새로운 분파운동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사의 어느 한 시점에서 상실되었던 초대교회의 공교회성을 회복하는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알기에 종교개혁가들 가운데 그 어떤 인물도 종교개혁을 분파운동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오늘날 로마가톨릭교회가 교회연합을 위해 개신교에게 화해의 손을 내미는 순간에도 역사적인 종교개혁이 공교회의 전통으로부터 일탈한 분파주의 운동이었다는 전제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로마가톨릭교회의 에큐메니즘을 대표하는 학자 조지 H. 타바드가 그의 주요 참고문헌에서 오버만의 연구물들을 종종 누락시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3. 한국적 대응과 과제
리처드 멀러는 지난 한 세기의 칼빈 연구사를 정리하면서 연구물을 크게 두 개의 범주로 구분하였다. 재미있게 표현하자면 ‘자연식’과 ‘가공식품’의 구분이다. 물론 멀러는 ‘자연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주로 칼빈이 남긴 1차 문헌을 수집, 편집, 번역하여 출판한 연구물들을 가리킨다.
한국에서 종교개혁사를 가르치는 역사신학자로서 경험하는 수업 현장에서의 어려움은 우리말로 번역된 1차 사료가 너무나 적다는 사실이다. 프로이센 제국 때 시작된 바이마르판 루터전집이 완간되는 데 무려 125년 이상의 수고가 요구된 것을 감안할 때, 루터나 칼빈의 전집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 역시 많은 수고를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고, 한국 교회와 신학교가 기꺼이 감당해야할 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복음과 바른 신앙고백에 기초한 참된 공교회성 연구와
교회연합을 위한 노력 경주해야
2차 문헌의 경우, 금세기 들어 종교개혁자들의 신학과 성경주해가 다시 종교개혁 연구의 중심부를 차지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물론 국내의 역사신학계는 지난 세기 동안 진행된 다변화된 연구의 긍정적인 결과물들을 활용하여 종교개혁 역사와 신학 연구에 통합적으로 반영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만 종교개혁이 발견하고 후기 종교개혁이 계승한 성경의 진리를 탐구하는 일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종합적 연구가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현대 에큐메니즘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직면한 대표적인 도전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마 가톨릭 교회는 개신교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며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래 공교회성을 둘러싼 싸움은 변함없이 지속되어 왔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록 한국 개신교회가 분열되어 있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기초한 참된 공교회성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응답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공교회의 바른 신앙고백에 기초한 참된 교회연합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안상혁 교수> 일/문/일/답
1. 역사신학이 목회와 신앙에 주는 의미와 유익은?
역사는 정체성과 직결되어 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는 것은 자연스런 반응이다. 역사신학은 시대 속에서 우리의 신앙이 원래 무엇이었고, 또 무엇인가를 설명해 준다. 특히 합신의 역사신학 강의들을 예로 든다면 개혁주의의 정체성과 개혁주의 입장에서 오늘의 우리와 다른 전통을 평가하는 것을 수업 목표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역사 신학은 개혁주의 목회를 추구하는 목회자를 양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2. 개혁파의 스콜라주의적 접근의 방법론적 당위성이 있지만 그동안 개혁신학 자체의 과도한 사변화의 위험성은 없었는지 묻는다면?
신학의 사변화를 평가하는 기준들 중 하나는 신학과 목회현장의 관련성이다. 후스토 곤잘레스에 따르면 중세 신학교육과 목회현장은 분리되어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중세 스콜라신학은 사변화의 위험성에 크게 노출됐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비해 종교개혁과 후기종교개혁의 신학교육은 철저히 목회지향적이었다. 신학교육의 목표가 목회자 양성이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신학수업이 목회 현장과 분리되지 않는 한, 스콜라주의적 방법론으로 강도 높게 신학훈련 받았던 많은 청교도 사역자들은 목회 현장에서 신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유용하게 활용했다.
한편, 근대에 들어와 대륙과 영미의 신학교들이 목회 현장의 변화와 필요 – 도시의 산업 노동자, 군인, 이주민, 서부개척 등이 동인이 된 – 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다. 특히 정통주의 말기에 신학자들과 교회가 신학논쟁에 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던 것이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된 하나의 역사적 배경으로 언급되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3. 최근 기독교한국루터회가 루터 전집 영문판(55권)을 번역 출판 중이고 고신 개혁주의 학술원에서 칼빈 전집을 데이터베이스화 했는데 칼빈 전집 문서 출판에 대한 개혁주의 측의 계획이나 진도는? 그리고 이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총 59권으로 구성된 칼빈의 라틴어 전집(1863-1900) 중 처음 4권은 ≪기독교강요≫이고 31권이 구약과 신약에 대한 주석 및 설교이다. ≪기독교강요≫의 초판과 1559년 판, 그리고 주석 전체가 이미 영어와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또한 칼빈의 서간문 역시 한글로 번역 출판되고 있다. 나머지 중 주요 논문들 역시 “선집”의 형태로 번역 출판되었다.
요컨대 칼빈 전집의 적지 않은 부분이 이미 번역된 것이다. 물론 칼빈의 라틴어/불어 전집이 우리말로 번역 출판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한편 최근 들어 칼빈이 사용한 원문에 근거하여 이미 번역된 유명한 저작들을 다시 검증하여 우리말로 출판하기 시작한 것은 환영할 만한 변화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시도가 칼빈의 다른 저작들로 확대되어 일반 신자와 연구자들에게 큰 유익을 주길 바란다.
4. 현 단계에서 한국 교회가 초대교회의 공교회성을 회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 몇 가지를 든다면?
세 가지만 말하자면 첫째, 우리의 공예배가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에 기초한 바른 예배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초대교회와 개혁교회의 선례를 따라 오늘날 교회도 신앙교육서를 활용하는 교회 교육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셋째, 공교회의 신앙고백을 계승한 교회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연대하며 오늘날 교회를 위협하는 이단들의 도전에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
5. 목회자나 성도들을 위한 역사신학적 필독서를 추천한다면?
역사 신학을 공부하는 최대의 장점은 1차 사료를 읽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목회자와 성도의 구별 없이 모든 신자들도 가능하면 초대교회로부터 17세기 청교도의 저작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한 인물들의 대표작 하나씩을 정독할 것을 권한다.
안상혁 교수 약력
·연세대학교 (B.A., 사학)
·서울대학교 대학원 (M.A., 서양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M.Div., 목회학)
·미국 Yale University (Divinity / S.T.M., 교회사)
·미국 Calvin Theological Seminary (Ph.D., 역사신학)
<저서>
·『언약신학 : 쟁점으로 읽는다』(영음사)
<공저>
·『오늘을 살아내는 참된 종말신앙』(영음사)
·『교회는 개혁되어야』(영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