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섬기며| 아우라지 산골에서_최용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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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며 섬기며>  

아우라지 산골에서

– 어느 농촌 목사의 소소한 이야기 –     

< 최용철 목사, 정선 유천교회 >

 

 

“은혜의 만나를 먹으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면 족할 것”  

 

   얼마 전에 개혁신보사 신임 편집국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정선 아우라지에서 경험하는 자잘한 이야기들을 글로 써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문에 올릴 만한 글을 쓸 재능과 자질이 안 되는 사람이라 말씀드렸지만, 그렇게 따지면 글을 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반문하심에 그럼 한 번 시도해 보겠노라 하였습니다. 이것이 이글을 쓰게 된 동기입니다.

   저는 강원도 정선 산골에서 20명도 안 되는 성도를 만 17년을 섬긴 농촌 목회자입니다. 그것마저도 삐걱거리며 목회를 하고 있는 아주 평범한 목사입니다. 또한 한 여인의 남편이며, 세 아이의 아빠인 가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역할에 있어서도 그렇게 신통치 못합니다. 젊은 시절에야 말씀이 충만한 교회,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가정에 대하여 자신감 충만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말씀이 전달되어도 그것이 이루어지는 현실과는 큰 간극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제 자신이 말씀으로 잘 훈련된 인격이 되지 않았는데 누구한테 무엇을 요구한단 말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질 때도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 교회에서 소소하게 터지는 갈등과 반목의 사건들, 그리고 말씀 가운데 바로 서지 못하는 저의 가정을 대면하게 됩니다. 아! 이렇게 인생이 흘러가다 결국 목회를 마치게 되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이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의 인생은 소소한 인생으로 마감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절망감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만 두려움이 있는 부분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맡은 자로서 교회에 하나님이 주시려는 은혜의 분량들이 저 때문에 막히면 어쩌나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땅에 세워진 주님의 통치 기관인데, 그리고 그것을 현시해야 할 책임이 우선적으로 교회의 목회자에게 있는데 그것을 알아차리는 일이나 잘 나타내는 것도 녹록치 않은 사실에 괴로움이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극복이 안 되는 제 자신의 사소한 게으름, 나태함, 무절제함, 이기심 등은 손가락에 박힌 가시처럼 저를 괴롭힙니다. 아마 이러한 요소들이 주의 은혜를 가로 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장애물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감히 탓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가정의 자녀들이 세속에 물들어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면서도 제대로 호통을 치지 못하는데 누구를 탓하랴 하는 심정을 갖게 됩니다. 사람 나이 50이면 지천명(知天命)이라 하였는데 지학(志學)도 못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임 초기에는 학생포함 35명이었던 성도가 지금은 21명으로 줄었습니다. 제가 부임하고 6명이 소천하시고, 학생들 대부분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도시로 떠나간 지 오래고, 시험에 빠져 잠시 쉬고 있는 성도도 있습니다. 게다가 농촌 인구는 계속적으로 감소 추세이고, 전도의 문은 잘 열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은혜를 주셔서 요즘은 혼자 사시는 심장병 환자 할아버지, 신장병 환자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생겼고, 만성신부전증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아 요양오신 할머니 한 분이 새신자로 나오셔서 교회에 기쁨이 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농촌교회가 그렇듯이 우리 교회 또한 70, 80 대가 주를 이룹니다. 어느 농촌교회의 목사의 기도 제목이 “주님 우리 교회 성도들 오래 살게 해 주십시오” 라는 말에 웃음이 나오기보다는 공감되는 바가 큽니다. 진심 어린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그저 성도가 적어도, 지금보다 더 줄어든다 해도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만나를 받아먹으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면 그것으로 족하리라는 것이 무지렁이 같은 머나먼 강원도 아우라지 고을 목사의 소소한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