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옹이_이종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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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옹 이  

< 이종섭 목사, 찬미교회>

 

   잣나무 숲을 산책하는 아침. 눈부시면서도 신비로운 햇살이 비친다. 맑고 신선한 공기가 스며든다. 한 걸음 두 걸음 걸을수록 가벼워지는 몸과 마음.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되는 것일까. 발을 딛고 선 땅에서 올라온 수액이 뼈와 혈관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 퍼져간다. 하늘을 바라보는 눈에서 투명한 가지들이 공중으로 뻗어 푸른 잎사귀들을 틔운다.

   걷다가 쉬다가 하면서 산책을 하는 동안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아니 지금까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옹이가 보인다. 한번 눈에 띈 옹이는 여기저기 수두룩하게 보이고, 옹이를 맞닥뜨린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주변의 잣나무들을 살펴보니 멀쩡한 잣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 모든 나무가 다 옹이를 가지고 있다. 한두 개가 아닌 서너 개씩의 옹이를.

   가지를 잘라낸 단면마다 찐득한 눈물이 흐른다. 갓 생긴 상처에서는 맑고 투명한 이슬방울이 흘러내리고 오래된 상처에서는 검푸른 피눈물이 고약하게 쏟아진다. 그 피눈물이 깨끗하게 마르고 나서야 어여쁘게 만들어지는 옹이. 한 나무 안에 상처가 깊어가는 옹이가 있고 상처가 아문 옹이가 있다. 잣나무 숲은 옹이를 만드는 공장이고 잣나무는 옹이를 맺는 수목이다.

   옹이들을 보면서 떠올리는 나 자신의 상처들. 크고 작은 상처가 생길 때마다 아파하고 신음하며 눈물을 흘리던 날들이 한 그루 두 그루 나무가 되어 숲을 이루고 있다. 멀리서 보면 푸른 나무들만 보이지만 숲에 들어서면 기둥에 난 상처와 눈물과 옹이가 보이는 숲. 내가 지나온 길에 숲이 보여 다행이지만 가지들이 보여주는 숲속에는 그 숲을 키우기 위한 상처와 옹이가 무수히도 많을 터. 잣나무 숲에서 피톤치드가 나와 나를 정결하게 하듯이 저 멀리 보이는 내 과거의 숲에서도 더욱 진한 피톤치드가 나와 나를 새롭게 한다. 그때는 나를 몹시도 힘들게 한 상처에서 이런 향기가 나다니.

   내 생각이나 습관들이 타인과 부딪혀 하나 둘씩 꺾이거나 잘려나갈 때마다 나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견디기 힘들어 속으로 끙끙대며 지내야했던 날들이 부지기수. 한두 번 경험하면, 아니 어느 정도 경험하면 그런 일들이 다시는 없어야 했건만 나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서로서로 상처를 주면서 살 수밖에 없었던 세월이었다.

   그렇게 지나온 세월의 숲을 다시 산책하며 나 자신을 살펴보는 잣나무 숲속. 어렴풋하게 볼수록 치유는커녕 꼭꼭 숨겨놓은 아픔이 덧나고 말지만 뚜렷하게 보면 볼수록 이해와 터득에서 비롯되는 현재의 유익과 성숙을 얻을 수 있는 법, 잣나무 숲에서 옹이를 발견한 아침에 평생의 유익이 될 옹이의 묵상이 가슴에서 자라고 있다.

   그때는 옹이만 남기고 잘려나간 가지들이 무척 아까웠을 것이다. 옹이가 클수록 그 허탈함도 크고 깊어 먹먹한 가슴으로 허공만 바라봐야 했던 날들. 옹이를 남긴 채 사라져버린 가지들은 나뭇가지 중에서 가장 큰 가지들이어서, 낫에 찍혀 말려졌다가 아궁이 불쏘시개가 되어버리는 신세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내가 아꼈던 것들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릴 때의 기분도 마찬가지여서 그 속상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때 옹이가 흘리는 눈물은 나무를 지저분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이슬같이 영롱한 눈물을 흘렸으나 가면 갈수록 시커먼 구정물을 흘려 나무 가까이 가지도 못하게 했고 그 나무를 붙잡지도 못하게 했다. 향도 좋을 뿐만 아니라 반듯하게 잘 자라고 있는 나무를 애써 저렇게 고통스럽고 지저분하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때 나는 너무 어려서 그 이유를 생각하기도 전에 옹이의 거친 흔적들을 먼저 볼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옹이를 껴안고 우는 내 손과 옷에 언제 아물지도 모르는 상처의 진액이 엉겨 붙어 안 그래도 힘들 수밖에 없는 상처를 더욱 힘들게 했었다.

   옹이로 인한 나무의 손해와 상처도 많지만 옹이가 주는 이득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떠올린다. 작은 그릇일수록 자신의 손실 그 자체만 생각하나 큰 그릇일수록 손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성과를 바라보는 법, 오늘은 마음의 크기를 조금이라도 늘려보기로 다짐한다. 그 마음에 잘 마른 옹이를 담아 고운 손으로 어루만져 본다.

   옹이가 있어야 자라는 나무. 가지치기를 해서 옹이를 만들지 않으면 숲에 가지들이 빽빽해 일을 할 수가 없다. 열매도 제대로 수확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옹이가 있어야 숲을 산책할 수 있다. 옹이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공간을 만든다. 그 공간 사이로 사람이 산책하고 오솔길이 생긴다.

   잣나무 숲속에 난 오솔길 산책을 마칠 때쯤, 나도 상처를 통해 자랐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 상처로 인해 다른 사람을 배려하게 되었고 어려움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내가 가지고 있는 옹이들은 내가 잘 자랐다는 증거. 이제 다른 사람이 내 곁을 지나가다 내 뾰족한 가지에 찔려 신음하거나 내 섣부른 가지에 걸려 넘어질 일이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내 곁을 지나가기 좋아하고, 나를 바라보다 내 몸에 새겨진 옹이를 보며 자신을 조용히 돌아보게 될 것이다. 나를 산책하면서 내가 뿜어내는 향기를 맡게 될 것이다.

   잣나무 숲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 고개를 돌려 잣나무 숲을 바라보니 푸드득 날아가는 산비둘기 한 마리. 허공에 흩어지는 잣나무 냄새.

옹이사진

* 이종섭 목사는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바람의 구문론><물결무늬 손뼈 화석>등의 시집을 상재하였으며 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