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디오 캄피(Emidio Campi) 박사와의 대화
대담 : 에미디오 캄피(Emidio Campi) 박사, 김학인 편집국장
배석 및 통역 : 김학유 총장, 박상봉 교수, 이남규 교수
합동신학대학원은 2023년 종교개혁주일을 기념하여 스위스 캄피 교수를 초청하여 “왈도파 운동과 신앙난민”을 주제로 강좌를 열었다. 세 번째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특강을 한 캄피 교수를 만나보았다.
▶ 김학인 편집국장(이하 편집국장) : 캄피 교수님께서는 최근 몇 년간 종교개혁과 관련한 강의로 합동신학대학원을 세 번 방문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교수님의 소감은 어떠하십니까?
▷ 에미디오 캄피 교수(이하 캄피 교수) : 저는 교수로서 활동하는 동안 대학교, 학회, 다양한 기관에서 종교개혁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이를 더 많은 대중에게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활용했습니다. 2015년 처음으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 손님으로 왔을 때, 특별히 따뜻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특강에서 다루는 주제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습니다. 특별히, 이는 열매로 드러났는데, 단 8년 만에 스위스 종교개혁과 관련된 출판물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국에서 많이 출판되었습니다. 스위스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츠빙글리, 불링거, 베르미글리 등의 여러 작품이 한국 신자들에게 소개되었습니다. 이는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연구뿐 아니라, 한국 교회의 목사와 신자들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나는 미래를 위해서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역할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믿습니다. 국가의 다양한 과학 및 교육 기관들과 나란히 개신교 종교개혁의 유산을 한국 교회와 신자들에게 소개하고, 이를 넘어 일반 사람들에게도 보편적 지식을 위해 전파하는 일에도 관심을 갖는 중요한 학교가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 편집국장 : 종교개혁 506주년을 맞아 16세기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한국 교회가 주목해야 할 점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캄피 교수 : 나는 한국 교회가 종교개혁의 핵심 단어인 ‘복음’이 무엇을 의미하며 또 ‘은혜’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지속적으로 성찰하고 재발견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종교개혁의 영적 유산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종교개혁을 너무도 협소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역사가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95개 반박문을 게시한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큰 착각입니다. 루터 이전에도 로마가톨릭교회를 비판하는 신학자들뿐 아니라, 그 교회에서 분리된 신앙 운동들이 늘 있었습니다. 그들 중 하나는 12세기에 등장한 왈도파입니다. 그들은 개인 소유물을 포기하고,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사제서품도 받지 못한 채 구걸하면서 설교했으며, 성경을 모국어(프랑스)로 번역했습니다. 이 때문에 왈도파는 로마가톨릭교회의 분노를 샀고, 수 세기 동안 추방되고 박해받았습니다.
어찌 되었든 16세기 종교개혁의 공론화뿐 아니라, 그 종교개혁의 진전도 매우 중요합니다. 특별히, 이주와 선교에 대한 관점에서 더 넓게 바라보면 종교개혁이 전 세계에 미친 영향은 더욱 분명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종교개혁이 영향을 준 종교적 망명자들, 순교자들, 찬송 시인들, 경건한 경건주의자들, 계몽주의자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 섬김의 봉사자들, 미래지향적인 사상들의 선구자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의 유산 아래서 수많은 개신교도가 세계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적십자부터 인종차별 반대까지 앙리 뒤낭, 알베르트 슈바이처, 프로렌스 나이팅게일, 클라라 라가즈, 마틴 루터 킹, 송천성(宋泉盛), 넬슨 만델라 같은 사람들이 세계적 다양성 속에서 새로운 자아상을 드러냈습니다.
개신교도들은 과시하지 않고 겸손하게 다음 사항을 명심해야 합니다: 먼저, 내적 독립성과 개인적 책임에 대한 지식을 갖춘 개신교는 정의와 평화에 대한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헌신이 시급히 필요한 사회와 양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대안으로써 개신교를 재발견해야 한다! 다음으로, 성경의 증거에 대한 적극적 지향성, 모든 신자의 만인 제사장직에 대한 추구, 개혁을 대비한 유연성과 합리적인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 개신교는 로마가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의 대안으로서 기독교인의 고유한 정체성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현재와 연결된 능력과 구체적 사명에 있어서 종교개혁은 다음과 같이 인식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은 그 자신 스스로에게 빚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유기체적으로 연결된 미래지향적인 인류의 영적이고 지적인 잠재력을 발휘하게 한 신앙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편집국장 : 이번 교수님의 강의 주제는 왈도파의 신앙에 관한 것입니다. 현재 왈도파 교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 캄피 교수 : 이탈리아의 왈도파 교회는 매우 작은 개신교 소수파에 속해 있습니다. 이 왈도파 교회에는 현재 가나와 한국 등에서 온 개신교 이민자 약 4,000명을 포함해 약 25,000명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왈도파 교회는 총회를 구성되어 있으며, 약 100명의 목회자가 130개 지역 교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왈도파 교회도 지금은 교인의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도 출산율이 낮습니다. 왈도파 교회의 분명한 성장은 특히 아프리카 국가와 아시아(한국 포함)에서 온 이민자들을 통하여 비롯되고 있습니다. 왈도파 교회는 성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소멸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대략 25,000명 정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소수파 교회는 이탈리아와 해외에 알려졌으며, 다른 교회 및 세속 지원 단체와 협력하여 이탈리아 정부가 법적으로 정한 위임세(Otto Per Mille)의 수입을 통하여 중요한 봉사활동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위임세는 1984년 도입되었으며, 소득세의 0.8%에 해당하므로 이탈리아어로 “Otto per Mille”(OPM)라고 합니다. 납세자는 소득의 1,000분의 8(위임세)을 종교 단체나 국가에 의무적으로 기부해야 하며, 누구에게 할당할 것인지도 결정합니다. 교회, 종교, 국가 봉사 기관, 비영리 단체 중에서 한 곳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왈도파 교회의 회원 수는 24,000명에 불과한데, 500,000명이 넘는 납세자가 매년 위임세 신고서에 복음주의 왈도파 교회를 선택하고 있는데, 그 액수는 대략 3천만 유로에 달합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위임세를 왈도파 교회에 할당하는 것일까요? 첫째로, 왈도파 교회는 할당받은 위임세의 수익을 완전히 투명하게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그들이 신뢰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왈도파 교회는 자신을 위해 돈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유일한 기관입니다. 모든 위임세 수익은 목회자의 급여나 교회 유지에 사용되지 않고, 오직 국내외 사회봉사와 문화 활동을 위해 사용됩니다. 그리고 최소 30%는 소위 개발도상국의 원조 사업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 프로젝트만 언급하고 싶습니다: 이탈리아에는 “지중해 희망”이라는 비영리 기구가 있습니다. 현재 지중해 희망은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박해받은 난민을 위해 “인도주의 통로”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왈도파 교회가 이 프로그램을 주도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난민들을 돕는 것은 왈도파들의 역사과 관련이 있는데, 그들은 650년 동안 쫓겨 다니고, 박해받았으며, 도망쳐야 했습니다. 왈도파 교회는 매우 작은 종교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2023년 8월 31일,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은 유럽 연합의 선구자이자 정치인인 알티에로 스피넬리를 기리는 기념탑 건립식을 계기로 왈도파 계곡의 중심 도시인 토레 펠리체에 있는 왈도파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왈도파 교회의 총회장은 “마타렐라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항상 복음의 빛 안에서 살아가는 신앙과 열정적으로 시민적 참여를 결합해 온 왈도파 교회에 큰 영광”이라고 환영했습니다.
이것은 “Lux lucet in tenebra”(빛은 어둠 속에서 빛난다)라는 문구와 함께 촛대와 일곱 개의 별을 나타내는 왈도파 문장에 대한 분명한 암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상징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는 단순하면서도 깊이 기억에 남는 교회의 문장입니다. 이탈리아 왈도파 교회는 비록 작지만, 사회에 큰 빛을 발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소외된 지역에서 늘 활동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의심의 여지 없이, 한국 교회는 바른 신학과 함께 특히 왈도파 교회의 공적인 책임에 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그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편집국장 : 한국 교회는 얼마 전까지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 교회는 신자들의 수적인 감소를 경험하고 있고, 사회적 신뢰성도 과거보다 더 떨어진 상황입니다. 한국 교회는 외부적이고 물리적인 박해보다 세속주의와 편의주의의 유혹을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 교회와 목회자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 캄피 교수 : 특별히 밝힐 것이 없습니다. 저는 한국 교회의 현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잘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스위스 교회의 일반적인 경향을 말하겠습니다.
지금 스위스 교회들도 수적 감소와 영향력의 감소를 겪고 있습니다. 스위스의 개신교 인구가 감소하는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 사회적 변화입니다. 산업화, 도시화한 현대사회에서 예전보다 사람들은 훨씬 삶의 여유가 없어졌습니다. 둘째로는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출산율의 저하 때문입니다. 세 번째가 심각한데 교회 내부적 문제입니다. 신학이 세속화, 자유화되어 분명한 신앙고백이 종교 중립적 언어로 대체되었습니다. 성경신학이 고대 언어와 문학적 연구나 종교나 역사 연구로 변질되었습니다. 다른 신학 분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직신학은 철학 쪽으로, 교회사는 문화사 쪽으로, 실천신학은 종교사회학과 심리학 쪽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믿음의 자리에 각종 이데올로기나 심리와 윤리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믿음이 빠진 윤리는 더 이상 기독교 진리가 아닙니다.
신학 분야를 하나로 묶는 것은 모든 과목이 성경에 기초하여 작동한다는 인식입니다. 그래서 신학의 핵심은 과거의 전통과 소통하면서도 현재의 경험과 과학적 발전에 주목하며 성경에 근거한 하나님의 지식을 반영하고 책임을 지려는 노력입니다. 이는 스위스와 한국에 있는 모든 신학교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목회자들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과거 신앙고백과 성례전을 강조하던 왈도파를 포함한 개혁주의를 향한 열정이 사그러들고 이제는 점차 목회가 관료화되었습니다. 스위스 교회들을 보면 교회의 집회에서 신앙고백이나, 죄 고백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국가가 그것을 금지하는 것도 아닌데 점차 그렇게 되어갑니다. 교회들마다 각자 자유롭게 하다 보니 어떤 통일된 신앙고백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복음적 설교, 영적 활력을 느끼지 못하는 메시지에 사람들은 굳이 교회 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신학적 모호성, 관료주의적인 목회자, 신학적 변질 등 내부적 문제들이 더 심각합니다.
▶ 편집국장 : 앞으로 교수님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 캄피 교수 : 며칠 전에 저는 80세가 되었습니다. 저의 건강은 양호하지만, 통계적으로 저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럽의 서쪽과 동쪽, 남쪽과 북쪽을 여행하고, 강의하며, 때로 취리히에 있는 작은 왈도파 교회에서 설교하기도 합니다. 저는 늘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을 즐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