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 박윤선 목사와의 만남 6] 방지일 목사가 기억하는 박윤선 목사(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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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지일 목사가 기억하는 박윤선 목사(6)

 

집에서부터 설교를 잘해라

우리가 평양에서 항상 모여 기도했습니다. 전차 전도를 가장 먼저 한 것이 우리입니다. 전차에다가 일본말이랑 우리말로 성경 말씀을 써서 붙이는 겁니다. 그거 하려면 돈 내야 합니다. 또 전신주에다가도 성경말씀을 써서 붙였습니다. 그것도 돈 내야 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 편지 봉투에 성경 말씀을 써서, 편지 보낼 때에는 꼭 그 봉투만 썼습니다. 그러면 배달부가 가다가도 그 봉투 보고 성경을 읽게 됩니다. 또 그 봉투로 전도지를 만들어서 전화부를 보고 거기에 있는 주소로 1년에 몇 번씩 편지를 했습니다.

전도지에는 꼭 성경 말씀으로 썼습니다.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 우리가 발행한 전도지 많습니다. 중요한 말씀은 빨간 글자, 파란 글자로 써서 이중 인쇄해서 일본사람에겐 일본말로 보내고, 한국 사람에겐 한국말로 보냈습니다. 일본 사람이 회답을 보내온 것도 많습니다. 더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묻기도 하고, 그렇게 우리는 좌우간 전도에 미쳤습니다.

편지들이 우리 집으로 다 왔습니다. 회답할 것은 박윤선이 했습니다. 박윤선은 좌우간 성경입니다. 나다나엘과 같이 솔직한 면에 큰 감화를 받았습니다. 세브란스에 입원해 있어서 둘째 딸인 혜란이가 찾아가니까 “그저 진실해라. 충성해라” 그렇게만 말했답니다. 혜란이가 “아버지, 우리 오빠에게 한마디 좀 해 주세요” 했더니 “난 하나님 앞에 몸 바쳐서 일한 사람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만 충성했지, 아들에게는 못 한 거 많다. 그러나 내가 뭐 아들에게 잘못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지켜줄 거야” 하는 그 말을 했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몸 바쳤는데, 난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너희들 다 지켜주지 않겠냐, 하는 말을 했다는 겁니다.

도서출판 영음사도 박윤선 목사님이 한국교회 선교를 위해서 바친다 하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유서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법적으로 봤을 때에는 그것도 유산이니까 후손들이 동의를 해야 하나 봅니다. 그런데이 문제도 아무 문제 없이 후손들이 동의를 해 줘서 잘 된 것으로 압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박 목사님이 생전에 드린 그 기도를 응답하신 겁니다. 박 목사님이 생전에 얼마나 기도를 하셨겠습니까? 그래서 온 가족이 화합이 되었습니다.

좌우간 내가 둘째 딸 혜란이에게 너는 새어머니한테 신세졌지 않았냐고 말했습니다. 혜란이가 서울대학에 갔을 때 후모한테 월사금 받아서 졸업했습니다.

박윤선 하면 친구로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자기(無自己)한 겁니다. 어린 아이입니다. 어린 아이.

 

영음사의 허락을 얻어 도서 <박윤선과의 만남>의 내용들을 연재한다.
–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