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크라이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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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전쟁은 겪어보지 않은 자들에게 달콤한 것이다”(dulce bellum inexpertis). 이 말은 중세의 가을을 수놓은 학자들 가운데 마지막 현자라고 불리는 에라스뮈스가 1515년에 낸 책자의 제목이다. 비록 로테르담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지만 스스로를 세계시민으로 여겼던 에라스뮈스는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위스 등 여러 나라를 활보하는 동안 장미 전쟁을 비롯해 사방에서 피 비린내를 발산하는 수많은 전쟁을 목격하였다. 에라스뮈스가 크고 작은 전쟁터의 참상을 지나면서 내린 결론은 어떤 전쟁도 달콤한 전쟁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전쟁은 패자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승자에게도 크나큰 손실을 끼치기 때문이다.

물론 꿈속에서 치르는 전쟁이나 가상현실의 전쟁 게임, 나무 막대기를 들고 장난질하는 사내아이들의 전쟁놀이, 역사적인 리인액트먼트, 서바이벌 게임 이런 것들은 성격이 많이 다르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생각만큼 단순하지가 않다. 이기려고 악을 쓰다 패배한 꿈은 잠에서 깨어나서도 한동안 기분이 씁쓸하고, 전쟁놀이에서 이긴 아이는 우쭐거리고 진 아이는 기가 죽는다. 게임으로 치르는 전쟁도 성격은 마찬가지이다. 거기에도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쟁 게임이 무서운 까닭은 실제로 승리를 갈취하여 패자를 지배하려는 전쟁심리가 꿈틀거린다는 데 있다. 이런 성향은 기회만 오면 실제화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런 것들 가운데 그 어느 것도 달콤할 수가 없다.
심지어 방어 전쟁도 쉽게 허용할 문제가 아니다. 칼뱅은 악한 통치자에게라도 복종할 것을 말하면서 줄곧 무저항을 강조하였다. 상황에 따라 약간의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사실이지만, 심지어 1562년 바씨 학살 같은 무서운 사건을 지켜보면서도 여전히 개인이나 민중이 주도하는 저항을 허용하지는 않았다. 물론 칼뱅의 이상과 달리 프랑스 위그노들은 정당방위를 목적으로 수차례 전쟁을 수행하였고, 칼뱅을 뒤이은 베자는 1572년 수만 명의 신교도들이 몰살당한 바돌로매 대학살에 치를 떨며 마침내 통치권을 가진 관리나 기관이 저항을 하는 것을 허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무조건 전쟁을 허용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방어 전쟁도 그렇다면, 하물며 침략 전쟁이겠는가? 유사 이래 지구상에는 수없이 많은 침략자들이 전쟁을 자행하였다. 우리의 역사 교과서에는 기억에 남겨야 할 대표적인 침략 전쟁들만이 인쇄되어 있지만, 불행하게도 역사의 어느 페이지에도 침략 전쟁이 결번된 적은 없다. 그래서 역사를 침략사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침략 전쟁의 밑바탕에는 배를 채우고 땅을 넓히려는 일개인의 검은 야욕이 도사리고 있고, 그런 개인들의 욕심이 뭉치면 자기에게 떨어질 이익에 눈이 먼 자들의 집단이기주의가 발동되고, 마침내 거대한 표현으로 아예 그들의 국가가 나서서 별별 구실을 다 둘러대며 주변의 약소국들에게 무력을 행사하여 침략을 감행한다. 하지만 피해자 못지않게 침략자도 반드시 응당한 손실을 겪어야 하기에 그 결과는 절대로 달콤하지 않다.

게다가 침략 전쟁이 결코 달콤할 수 없는 까닭은 궁극적으로 실패로 끝나고 말기 때문이다. 역사에 어느 침략도 끝까지 성공한 적이 없다.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도 망했고, 시이저의 로마도 망했다. 칭기즈칸도 망했고, 나폴레옹도 망했다. 무솔리니의 파시즘도 망했고, 히틀러의 나치즘도 망했다. 서방의 식민 침략도 망했고, 한반도를 침략한 일제도 망했다. 칼을 가진 자는 칼로 망한다. 침략자가 일시적으로 승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은 손을 들고야 만다. 벌목꾼의 삽과 곡괭이가 산야의 뿌리와 줄기를 모조리 캐내고 자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땅은 빼앗는 자의 것이 아니라 온유한 자의 것이다. 침략 전쟁은 성공한 적이 없다는 역사의 교훈을 따르면, 이유가 무엇이든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침략 전쟁이 스스로 실패로 돌아가기까지는 침공 당하는 자에게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안타까운 문제이다.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침략 전쟁을 중단시키려면, 무엇보다도 러시아 국민이 용감하게 단합하여 전쟁을 주도하는 자국 정부를 향해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우렁찬 목소리를 높여야 하고, 이와 더불어 국제사회가 어떻게 사태가 진행되는지 눈치를 살필 것이 아니라 긴밀하고 강력한 협력을 이루어 총체적인 제재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