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앙시] 문 門_장수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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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門

 

이제사 들어섰습니다.
너무나 오랜 세월을
멀리서만 이방인처럼 바라보던
이 문 안에

이제사 고개를 숙이고
어리석은 양이 들어섰습니다.

그 숱한 나날을
어둡게 방황하던
죄 많은 마음이라서
죄 많은 몸이라서

어제 밤새도록 씻었습니다.
어제 밤새도록 닦았습니다.

아직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끌어 주옵소서
보살펴 주옵소서
높이 계신 하나님.

이제사 들어선
이 문 안에서
처음으로 올리는 참된 기도
밝은 빛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시작노트 : 내가 처음으로 신앙의 문에 들어섰을 때의 작품이다. 사실 나는 교회에 나오도록 권유를 받았을 때 어떤 형용하기 어려운 분노까지 느끼면서 거절하곤 했었다. 왜냐하면 몇 해 동안 엄청난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더욱 냉혹했던 사람들이 바로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인들이라면 무조건 증오했고 모욕까지 주었다. 그러던 내가 신앙의 문에 들어섰으니 기적이라기보다 하나님이 나를 택해 주셨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 후부터 나는 많은 축복을 받았고 또한 받고 있다. <문>이라는 청순한 작품을 나는 영원히 아끼고 사랑할 것이다.

장수철 시인(1916-1993) : 평양 출생. 기독교 시인, 아동문학가. 시집 <전망도>, <서정부락>, <관악산 뻐꾸기>, <계절의 송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