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금은 개인 신앙이 승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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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개인 신앙이 승화할 때

모든 시대는 각자에게 고유한 시대이다. 옛날 사람은 자신의 시대를 살았고, 앞날 사람도 자신의 시대를 살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시대는 우리에게만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과거이든 미래이든 돌아가 또는 앞당겨 살아볼 수 없기 때문에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어느 중세 역사가는 중세가 힘들고 무서운 시대였기 때문에 그 때로 돌아가서 살고픈 마음은 없다고 말한다. 반면에 어느 미래 학자는 혁신을 내다보면서 거기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으로 설렌다. 그러나 우리가 옛날로 돌아가지 않고 미래로 점프하지 않는 까닭은 과거의 미흡함을 기피하거나 미래의 신기함을 불신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시대 자체가 고유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에게 자기 시대는 모두 어렵다. 최첨단의 문명을 자랑하는 우리가 난데없이 지구를 강타하는 신형 감염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듯이, 과거에는 당시의 미진한 환경 가운데 인류를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넣는 페스트로 진통을 겪었다. 미래라고 해서 더 낫지 않을 것임은 거의 틀림없는 예측이다. 미래에는 그 때의 상황에서 또다시 미지의 돌림병으로 고통을 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대는 자기만의 고유한 의미를 가진다. 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이런 시대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우리 나름대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 역사의 교훈을 따르면, 진정한 신자는 시대를 한탄하기보다 각자도생으로 믿음 길을 추구하였다. 불리하고 불안한 상황에서도 자기에게 맞는 할 일 만드는 것, 오늘의 나를 빚어내는 것이야 말로 참된 신자의 도리이다. 이런 점에서 구순을 바라보는 어느 노교수님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는 가슴 속에 맹렬한 도전을 불러일으킨다. 연일 한국어-중국어-일본어 성경을 비교하며 연구하는 데 몰입하더니, 그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영어-불어-독일어 성경을 펴놓고 비교 검토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전설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아흔 살을 훌쩍 넘긴 후에도 하루 6시간씩 연습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실력이 늘기 때문이요”(Because I think I am making progress)라고 대답했던 것을 방불케 한다.

시대를 한탄하며 주저앉아 있는 것은 좋은 신자의 모습이 아니다. 도리어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만 주어진 고유한 시대임을 확신하고 개인의 경건을 창의적으로 심화하는 데 힘써야 한다. 예를 들면, 성경을 꾸준히 규칙적으로 꼼꼼히 읽는 것, 성경 요절을 반복적으로 외우되 점점 수량을 늘려가는 것,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치며 알록달록하게 수놓으면서 성경을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다.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 기도할 제목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는 것, 기도의 내용을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입술에 수시로 찬송을 올리는 것, 예배에서 들었던 설교를 반추해보는 것, 신앙을 안정시켜주는 고전적인 책들을 정독하는 것, 여러 메시지 서비스를 이용하여 길라잡이가 되는 신앙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시도해볼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을 개인의 몫으로만 맡기지 말고, 많은 성도들이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교회별로 또는 노회별로 나아가서는 총회가 신앙 증진 사업을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담 없이 실천할 수 있게 현금에 맞는 성경 읽기 방법을 고안하여 배포하고, 기초부터 고급까지 암송구절을 요목대로 정리하여 공급하고, 경건에 유익한 도서들을 선정하여 필독 부분을 추려내어 추천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을 수월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명석한 인사들로 구성된 전문위원회를 설치하는 것도 한 가지 훌륭한 방법이 될 것이다. 칠년 기근을 대처하기 위해 바로가 요셉을 세웠듯이 말이다.

종교개혁 당시, 신앙 확립과 경건 향상을 개인의 노력으로 내버려두지 않고, 여러 주요도시의 지도급 기관들이 힘닿는 대로 유수한 학자들을 동원하여 다양한 신앙문서들을 작성해서 도회지뿐 아니라 촌구석까지 셀 수없이 많은 신자들에게 널리 보급했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덕분에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던 개인 신자들은 이런 문서들을 젖줄로 삼아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생명의 양식을 먹으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금은 우리에게만, 아니 꼭 집어 말하자면 나에게만 고유한 시대이다. 그러므로 이때를 놓치지 말고 개인의 신앙을 최고조로 승화시켜야 한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