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위협에 놓인 오늘의 교회를 위해
<김인석 목사 | 칼빈장로교회>
한편은 신앙적으로 다른 한편은 시민사회적으로
약한 자들을 지도할 필요가 있다
요즘 사회로부터 우리가 요구받고 있는 것은 복음 진리의 고귀함이 몰상식하지도 않으면서 상식에 머물지 않고 상식을 뛰어넘는 더 높은 가치로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칼빈이 말하는 적정과 절도의 원리란 어중간한 회색지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할 수만 있으면 항상 진리 편에 서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기준을 두지 않는 중도란 죽은 시계와 같아서 하루에 두 번 정확한 시각을 가리키지만 아무도 그 시계로 시간을 맞춰 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진리를 따르는 자들은 때때로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자유주의자로 보이고, 자유주의자들에겐 원리주의자로 보일 수 있으며 지금까지 그런 편견을 받아 왔습니다. 그것은 진리의 기준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참된 진리에서 멀어진 자들이 자기 자리를 기준점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보수냐 진보냐 하는 논쟁에서도 같은 논리입니다.
우리가 직면한 오늘의 고민은 공예배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보편상식에도 무모해 보이지 않으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자칫하면 한편은 종교적 행위가 감염병도 극복할 수 있다는 몰상식과 미신에 빠지거나 다른 한편은 거룩한 믿음의 도리를 보편 상식 아래 두려는 합리주의와 무신론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여기서 적정과 절도의 원리를 생각해 봅니다.
진정한 의사는 감염의 위험 속에서도 환자 곁에서 그를 치료할 것입니다. 그 외에 감염의 위험 속에도 자기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때로는 그런 의무가 없는 사람도 이웃사랑이라는 두 번째 돌판의 명령에 따라 환자를 돌보거나 필요한 일에 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하나님의 교회는 교회의 고유하고 신성한 목적을 어떻게 보존하고 유지해야 할까요? 거듭난 신자 각 개인이 교회라는 관점에서 교회가 그러한 신자들의 회합에 불과하다면 주일의 공예배는 시간과 장소와 방법에 얼마든지 얽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비록 사람들의 회집으로 가시적 교회를 이루고 공예배가 진행되지만 논리적으로 택함 받은 한 개인은 택함 받은 무리로서 전체 보편교회보다 선행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체로서 다수의 신자들이 모여서 교회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각인들이 보편교회로 초대를 받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장립된 목사의 고유직무를 어떻게 생각해야할까요? 각각 은사에 따라 여러 가지 직무가 있을지라도 한 지교회를 섬기는 목사는 말씀과 성례 그리고 치리로 지교회에 속한 신자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며 성결하게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개인 신자들에 관한 것만 아니라 지교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게 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지교회 안에 어떤 신자들은 현 상태에서 공예배를 고수함으로 시험에 빠질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공예배를 고수하지 않음으로 시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교회의 목적과 목사의 직무는 공교회가 유지 보존되며 그 목적을 이루는 데 중단 없이 수행되어야만 합니다. 교회는 만일을 대비하여 사회적으로 요구된 예방지침을 충실히 구비하여, 예배에 나오는 신자들이 있는 한 공예배는 유지되고 수행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이 조롱당하거나 폄훼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건강에 위협이 있거나 감염에 노출되기 쉬운 형편에 놓인 사람들, 교회에 나옴으로써 시험에 빠질 수 있는 사람들, 기타 나올 수 없는 형편에 놓인 사람들은 사적예배든 기타 다른 방법으로 주일의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돌보며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공연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더 큰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다만 이러한 경우 우리는 두 부류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편견과 오해에 대하여 철저하게 경계하지 않는다면 안 될 것입니다.
결국, 중단이냐 강행이냐 하는 이 딜레마에서 방황하기보다는 교회는 교회의 목적을 구현하는 데 이바지하되 정부가 권고하는 물리적 거리두기와 예방지침을 존중하여 두 가지 차원에서- 한 편은 신앙적으로 다른 한 편은 시민 사회적으로 – 약한 자들을 지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옴으로써 약해질 수 있는 분들, 나오지 않음으로써 약해질 수 있는 분들에 대하여 충분히 살피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신앙과 삶이 충돌하거나 갈등을 일으키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각각에게 주어진 길을 감으로서 동일하게 하나님의 영광에 이바지하도록 하는 데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여러 가지 위협 앞에서 오늘의 교회가 지향해야 할 도리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