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현대 성 윤리의 배후 사상을 돌아보다
– 낸시 피어시, ‘네 몸을 사랑하라’
<이재욱 목사 | 예사랑교회 부목사>
이 책은 기독교세계관에 기초하여 몸에 대한
세속 사상의 이분법을 해체하며 극복하려 한다
인간을 향한 성경의 관점은 항상 전인적이며
몸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요구되는 것
21세기는 포스트모던, 다원주의 시대로 불린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세계는 한 동네처럼 가까워졌다. 다양한 문화와 관습이 뒤섞인 것이 원인이다. 이는 문화의 다양성 자체보다는 보편적 진리와 가치의 실종에서 비롯되었다. 절대 진리의 상실은 거룩한 삶을 방해하고 교회는 안팎으로 새로운 도전에 직면에 있다. 우리 교단은 동성애 차별 금지법, 학생인권조례 등 기독교의 가치를 흔드는 사상들의 근원에 맞서 응전하고 있다. 이는 인권 문제가 아닌 진리 문제를 담지하고 있다.
최근 성 윤리에 관한 기념비적인 책이 출간됐다. 낸시 피어시의 <네 몸을 사랑하라, 복 있는 사람>이다. 이 책은 전작 <완전한 진리>의 맥 속에서 단순히 성 윤리를 다루기보다 그 배후의 사상을 돌아본다. 저자인 낸시 피어시의 가치체계는 잘 알려진 프란시스 쉐퍼로부터 출발한다. 쉐퍼는 성경을 통해 철학과 문학 그리고 사회와 정치를 분석하고 예언적 방향을 제시한 방식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기독교 신앙에 의구심을 품어왔던 낸시 피어시가 확실한 진리를 갖게 된 계기는 쉐퍼와의 만남이었다.
- 기독교 세계관
이 책을 이해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은 기독교 세계관이다. 낸시의 주창의 저변에는 기독교 세계관이 흐르고 있다. 그녀의 말대로 세계관은 세계를 잘 항해하는 법을 일러주는 마음의 지도와 같다.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의 객관적 진리를 심연에 새기는 계시적 인식론이라 할 수 있다. 본래 세계관은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철학, 예술, 문학, 사회제도 등 삶에 대한 특정한 조망이나 시대정신이 표현되어 있다는 사상을 전개한 것이다. 따라서 세계관이라는 용어 속에는 다원주의와 상대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이에 기독교 세계관은 자기가 속해 있는 시대정신에 맞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성경적인 세계관을 착상해야 한다. 낸시는 말한다. “세계관을 공부하는 목적은 기독교를 그 문화적 포로 상태에서 해방하고 그 권능을 발휘하게 함으로써 세상을 변혁하도록 풀어주는 것이다.” “네 몸을 사랑하라” 그는 철저히 이러한 세계관을 견지한다.
근대에 와서 통일된 진리체계는 와해되었다. 프란시스 쉐퍼는 이를 나누인 이층 비유로 설명한다. 하층부는 검증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과학의 영역이다. 곧 공적, 객관적이며 모든 사람에게 타당하다. 그러나 상층부는 사적 ,주관적, 상대적인 영역이다. 여기에 인간의 앎의 불확실성을 강조하는 윤리와 신학이 있다. 따라서 이 영역에서는 상대성이 메아리친다.
“그건 당신에게는 사실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아닙니다.”
낸시는 쉐퍼의 내용을 받아 ‘사실’(하층부)/‘가치’(상층부)로 나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분리가 전제된다. 곧 인간의 몸과 인격을 파편화하는 이원론이다. 그러기에 이 책은 몸에 대한 세속 사상의 이분법을 해체하며 극복하려 한다. 즉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실과 가치,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 사이를 복원시키는 것이다. 이분법은 기독교를 종교적 진리의 영역에 국한시킨다. 이는 이중적 사고를 파생할 뿐 아 니라 삶을 파편화시킨다. “몸”에 관한 세속의 이원론 역시 이런 것이다. 낸시는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관점 속에 기독교적 세계관이 ‘몸’ 이원론을 극복하는 총체적 진리임을 보여주려 한다.
- 몸으로 말해요
먼저, 이 책은 변증적이다. 현대 사상에 맞서 기독교를 방어하려는 소극적인 변증이 아니라 ‘몸’ 이라는 구체적인 ‘형상’을 통해 적극적인 변증으로 도약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지위가 아니라 인격의 지위다.”
“수정란은 분명한 인간 생명이지만 인격은 아니다.”
“인간 유기체의 생명은 수정 단계에 시작되지만, 인격체의 생명은 그렇게 일찍 시작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세속 사상은 몸과 인격을 철저히 분리한다. 인간‘됨’의 자격 갖춤은 개인의 주관적 가치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몸 인격을 분리하는 철학적 사조의 출발은 플라톤이다. 그는 몸이 진정한 자아의 외 부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데카르트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며 진정한 인간 정체성은 지성에만 있다고 전제한다. 그는 인간을 완전한 두 물질로 나눈다. 지성이 곧 자아이다. 몸은 기하학적 확장에 불과하고 영혼은 생각만하는 것이다. 인간 몸은 존엄성을 담지한 인격인가? 통제하고 조종할 수 있는 물질인가? 일반 대중은 몸 이원론의 언어를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몸으로 받아 들인다. 몸 윤리 이면에는 사람됨 이론이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여기에 함의된 낙태, 동성에, 성전환, 생명 윤리 등은 곡해된다. 그렇다면 성경 윤리의 진가는 어떠한가?
“사람됨 이론에 따르면 태아는 인간이지만 죽인다고 해도 아무런 윤리적 결과가 따르지 않는다. 태아가 인격을 취할 때까지 태아를 보호해야 할 아무런 도덕적 의무가 없다 … 이와 반대로 성경적 세계관은 전 인적이다 … 몸과 영혼이 통합된 정신적 물리적 연합체를 형성하여 상호보완적이라고 인정한다.”(72)
인간 존엄성의 본질은 하나님께 있다. 곧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시고 아시며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뿌리내린다. 따라서 기독교 세계관은 몸과 인격을 일치시키며, 인간본성을 통합적 개체이며 전인적 관점으로 본다. 이를 위해 낸시는 성경을 적실히 사용한다.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는 꿰어 맞추기식 논증을 피하면서 동시에 몸에 대한 성경의 정합성을 꿰뚫는다. 또한 교회 역사의 도움을 받는다. 고대 교회 교부문헌으로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는 성/속 이원론의 행태가 역사 속에 여러 모양의 탈을 쓰고 등장했음을 내포한다. 초기 교회는 분명히 달랐다. 그들의 문화는 급진적이었다. 또한 세속을 거스르는 반문화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몸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몸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성향은 주변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변증이다.
다음으로, 책 제목이 암시하듯이 기독교 윤리를 함의한다. 낙태, 안락사, 성적 쾌락, 동성애, 성전환에 이르는 포괄적인 생명 윤리를 다룬다. 이는 매우 현대적이다. 과거 낸시의 <완전한 진리>와 같은 논의에서는 서구사회와 맞물려 있었기에 동양, 특히 한국적 상황에서는 정착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몸’은 다르다. 몸 이원론은 서양과 동양 모두를 집어삼키고 있다. 교회 역시 다르지 않다. 현재 발생하고 있 는 윤리적 문제는 교회와 무관한가? 단지 외부적인 문제인가? 이런 관점에서 “네 몸을 사랑하라”는 목회적이다. 낸시는 교회적 맥락에서 문제를 들춘다. 하지만 아픈 자를 감싸 안는 섬세함을 지녔다. 이 부분은 여느 저자에게서 볼 수 없는 책의 독특성이다.
“성경이 구원 메시지만이 아니라 인간과 역사, 자연과 사회 등 삶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한 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전략적으로 효과적으로 보호하려면, 구호와 플래카드를 넘어서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사고를 형성하는 세속 세계관들을 깨닫도록 도와야 한다. 죽음과 절망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에 맞서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긍정적 예를 만들어야 한다.”(158)
“교회는 성경의 윤리적 진리를 확실히 전하면서도, 성 혁명의 거짓말에 상처받은 피해자들의 쉼터가 되어야 한다.”(208)
기독교 윤리학자인 다우마는 윤리학을 반성하는 학문으로 규정했다. 곧 성경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관점 의 조명을 통해서 도덕적 행위를 돌아보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도덕적 반성’이라는 말 앞에 매우 낮설다. 이신칭의의 복음이 강조되다 보니 복음의 윤리성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이 신앙고백의 문제라면 윤리는 신앙실천의 문제이다. 복음에 계시된 삼위 하나님은 우리를 믿게도 하시지만 행하게도 하신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으면 악하게 살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이다. 따라서 “네 몸을 사랑하라”는 몸 윤리학이다. 이 책에서는 생명 윤리뿐 아니라 성 윤리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혼전 성관계, 이혼, 포르노, 독신, 부부생활, 피임, 동성애, 성전환에 이르기까지 매우 포괄적이다. 현대교회는 성윤리가 잠식되고 있다. 성은 상품화 된지 오래이다. 교인은 물론이고 직분자까지 휘말리고 있다. 일시적 일탈이 아닌 몸 이원론에 의한 탈선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네 몸을 사랑하라”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적절한 답을 줄 것이다.
“엄마, 아빠, 저랑 제 여자친구/남자친구는 서로 사랑해요. 성관계를 갖는 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다른 친구들은 다 해요.” 당신 아들이나 딸, 혹은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고 상상해보라 …(p.403)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가 진리인가?”라고 묻기보다는 “왜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편협한가?”라고 묻는다. 동성애에 끌리거나 성별 비순응자들에게 사실은 세속 윤리보다 성경 윤리가 더 사랑을 베풀고 인간적이며 인권을 지지하는 이유를 친절한 대화체로 설명해 보라(p.409).
- 몸의 재발견
칼뱅은 기독교 강요에서 사람의 창조에 대해 말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지으신 만물 가운데서 그의 공의 와 지혜와 선하심을 드러내는 가장 고귀하고도 탁월한 모범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연결된다. 인간이 신학적 주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이다(엡 4:24; 골 3:10). 인간을 향한 성경의 관점은 항상 전인적이다.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몸/육체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칼뱅은 말한다.
“하나님의 형상의 주된 좌소는 물로 아담의 정신과 마음, 혹은 영혼과 그 기능들에 있었지만, 사람의 모든 부분가운데-심지어 육체조차도- 그 형상이 어느 정도라도 미치지 않는 것이 없다.”(기독교강요 1, 15, 3)
따라서 종교개혁은 교회의 개혁일 뿐 아니라 몸의 개혁이다. 장로교회의 유산인 <웨스트민스터 대교리 문답> 138문과 139문도 언약 백성의 몸 윤리를 다룬다.
- 나가며
지금 우리의 몸은 분명 결함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영과 몸은 회복되었다. 몸은 장차 부활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신다. 우리의 몸은 구속 받은 몸이며 성령의 전이며 몸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러기에 장래의 몸은 현재의 몸을 더욱 의미 있게 한다. 정암 박윤선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찌하여 신자(의인)의 몸도 불신자의 몸과 마찬가지로 사망하게 되는가? 이 세상에서 신자의 몸의 사망이 없다면, 그의 성화(聖化)되어 가는 일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고난과 사망이 없다면 극도로 교만하여져서 자기에게 죄악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2장 해설)
몸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거룩의 도구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기뻐하신다. 여기에 몸의 기쁨, 몸의 희락, 몸의 영광이 있다.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립보서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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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도서>
♣제목: 네 몸을 사랑하라
♣부제: 성과 생명에 대한 도전과 기독교 세계관의 답변
♣펴낸이: 도서출판 복있는 사람
♣지은이: 낸시 피어시
♣옮긴이: 이지혜
♣판형: 신국변형 양장
♣면수: 493쪽
♣가격: 2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