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 그날이 오면 _ 심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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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시

 

그날이 오면

 

                                    심     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1930년작, 1949년 유고시집 ‘그날이 오면’에 수록>

 

<시 감상>

이 시는 조국 광복의 그날을 간절히 염원하며 어떤 희생과 고통도 감내하겠다는 시인의 애국적 결의가 돋보인다. 작가 심 훈(沈熏 1901~1936)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시인, 소설가, 언론인, 영화인이었다. 1919년 만세운동에 가담하여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 유명한 옥중편지인 ‘어머니에게 올리는 글월’을 썼다. 대표작으로는 애국적 농촌 계몽운동을 주제로 한 소설 ‘상록수’와 ‘영원의 미소’ 등이 있다. 최근에 1949년 초판본 표지를 그대로 한 시집 <그날이 오면>이 재출간 되기도 하였다. _ 편집자

<사진 _ 서대문형무소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