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수련회 특강요약
양을 치는 목자인 장로
최홍준 목사_호산나교회
“젊은이들을 위하여 기성 세대가 과감하게 희생, 양보해야”
“장로들은 심방과 봉사 통해 목사와 동역자 관계 정립해야”
금번 전국 장로연합회 수련회를 맞아 두 가지 면에서 강의를 진행하고자 합
니다. 하나는 차세대 성도들을 위한 우리 기성 세대들의 역할에 대한 것이
며 다른 하나는 장로의 본질 회복을 통한 미래 한국교회의 전망에 대한 것입
니다.
차세대 위한 기성 세대의 역할과 전략
현대 교회상들을 대별해 보면 ① 점차 노쇠화 되고 소멸되어 가고 있는 교회
상, ② 왕성하기는 하지만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빈야드식 교회상, ③ 복
음주의를 기반으로 건전하면서도 왕성하게 발전하는 교회상으로 나눌 수 있
을 것입니다.
사사기를 보면 이런 기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
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
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
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2:12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
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
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삿 2:10-
12).
사사기가 보도하고 있는 것처럼 여호수아 이후 세대들은 점차 여호와를 섬기
는 일에서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대신해 바알과 같은 우상 숭
배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들을 보면 점차 하나님을 떠나
가고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세대들은 그렇
다 할지라도 다음 세대, 즉 우리 후배들이 과연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게 될
지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때에 신앙의 계승에 대해 심각하
게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는 젊은이들에게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젊은이들이 떠나는
교회에는 그만큼 소망이 없기 마련입니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바로 기성 세대들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
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
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
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
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
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
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
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
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
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고전 9:19-23)는 바울 사도의 말씀처럼 원리
는 변하지 않지만 적용하는 면에서는 다양성을 제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 유럽 교회들이나 미국의 장로교회들이 점차 노쇠해 가고 있습니까? 그것
은 복음 적용의 다양성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본질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복음을 전달하는 과정과 방법의 다양성까지
포
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 시대의 특성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
어야 합니다.
우리 선배들은 철저하게 자기 희생을 통해 교회를 지켜 왔습니다. 그들은 밤
낮으로 강대상에 엎드려 기도하면서 오늘날 한국교회를 이만큼의 부흥을 일
구어 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들이 남겨놓은 열매를 먹으며 만
족해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기성 세대들은 젊은이들이 교회에 발을 붙이도록 스스로
자신을 희생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젊은이들을 위해 우리
의 기득권을 과감하게 양보하는 것입니다.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과 청소년들
을 위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일환 중의 하나가 바로 성경적 리더
십을 찾는 일입니다.
장로의 본질 회복을 통한 미래 한국교회의 전망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을 위해 무엇보다도 한국교회는 장로의 본질을 확인하
고 그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대다수 장로들에게서
는 안타깝게도 바른 장로상을 찾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장로들에게는 백성을 다스리는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습니다(민 11:16-17).
이 장로들에게 사도 바울은 목양
을 당부했었습니다(행 20:28-30). 바울 사도
는 “눈물로 목양하라”고 강조하면서(행 20:31) 마치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
면서 자녀를 위해 눈물로 양육하듯이 교인들을 양육하라고 부탁합니다.
목사가 회중들을 상대로 강대상에서 설교할 때에는 눈물을 흘릴 기회가 많
지 않습니다. 그러나 직접 성도들을 만나 목양을 하게 되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아가 바울 사도는 “주님과 말씀 앞에 무릎꿇고 양떼
를 이리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할 것”을 당부했습니다(행 20:32).
오늘날의 장로상을 보면 성경과 헌법에 규정된 사역의 5%에도 미치지 못하
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 때문에 교회 안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성도들
이 고통을 당하며 시험에 들게 됩니다. 초신자들 때문에 시험드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오히려 목사와 장로들 때문에 시험드는 경우가 많습니
다.
우리 헌법 교회정치 제9장 제3조에서는 ‘장로의 직무’에 대해 1항에서는
“교회의 영적 상황을 목사와 함께 성경적으로 돌본다(행 28:28-30). 장로
는 신자의 대표자로서 목사와 협동하지 않고 자의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자로서 행정과 권징에
수종들며, 지교회 혹은 전국 교회의 영적 상황을 살피
는 데 수종든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부분 장로들은 행정적인 일에 치중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양
떼를 돌보는 일에는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양들
과 너무 거리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2항에서는 “교리적 오해나 도덕상 부
패를 방지하도록 기도하며 사역한다”고 되어 있고, 3항에서는 “신자를 심
방하여 위로하고 교훈하며 보살핀다. 신자를 심방하되 특별히 병자와 상가
를 찾아 위로하며 진리를 잘 알지 못하는 자와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며 돌봐
야 할 것이니 일반 신자보다 장로는 개인적 의무와 직무상 책임이 더욱 중하
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4항에서는 “신자의 신앙을 살피고 위하여 기도한다(약 5:14-16). 장로는
신자와 함께 기도하며 위하여 기도하고 목사의 설교를 바로 이해하도록 도와
준다”고 말하고, 제6항에서는 “특히 환자와 슬픔을 당한 자와 회개하는 자
와 도움받아야 할 자가 있을 때에는 목사에게 보고한다”고 말하고 있습니
다. 이처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는 장로상을 떠나있는 교회들을 볼 때 과
연 우
리들에게 소망이 있는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대부분 장로들은 중후한 연령과 사회적으로 안정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상담
을 해도 젊은 부목사들보다 훨씬 성도들에게 다가 서기 쉽습니다. 호산나교
회에서는 장로로 피택된 후 7년 동안은 시무장로로서 주로 행정적인 분야에
서 활동을 하고, 7년 후부터는 65세까지는 목양 사역에 전력을 하고 있습니
다. 65세 이후부터는 70세까지 주로 대외 활동, 즉 노회나 총회를 위해 봉사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목양사역 장로들은 맡겨진 교구들을 맡아 심방 및 성도들을 돌보
는 일에 적극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및 특별한 상황들에 대해
서는 목사에게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명실공히 장로들과
목사 사이에 동역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스템이 형성된 가운데 목사가 1년 동안 안식년을 지내고 있는 동안에
도 200여 명의 결신자들이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목양장로
들이 수고한 결과였습니다. 이런 시스템에 형성되면 목회자는 장로들에 대
한 신뢰와 존경심을 가지게 됩니다. 아울러 성도들 역시 장로들에 대한 신임
과 존경을 하게
됩니다.
성도들에게 존경받고 신뢰받는 장로, 믿음의 표상이 되는 장로야말로 진정
한 장로상입니다. 이런 장로들이 있는 교회라면 반드시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이 장로들을 존경하고 신뢰하게 되면 당
회 결정에 대해서도 절대적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히든카드는 바로 이것입니다. 장로들이 장로의 본질을 회복할 때 교회 안에
있는 대부분의 분란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목양장로들은 양떼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목양장로
운동은 작은 교회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럴 때 한국교회의 미래는 활
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