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의 얼굴을 봤어요” 김성훈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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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필

“마귀의 얼굴을 봤어요”

김성훈 집사| 새누리교회, 갈릴리남성합창단원

월요일은 출근길이 평소보다 출근길 정체가 더 심하다. 평소보다 훨씬 일찍 
나섰지만 ‘혹시나’했던 기대가 민망하게 ‘역시나’ 버스는 늘 그랬듯이 
만원이었다.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그시 눈을 감고 잠깐의 휴면
을 취하고 있었고, 서있는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에 눈동자를 풀고 무념속
을 방황하고 있었다. 버스의 흔들림에 버틸 수 있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
고 의자 등받이 귀퉁이를 빌어 몸을 의탁하고 책을 꺼내들었다. 

정체구역을 벗어나서 이제 어느 정도 속도를 내는가 싶더니 갑자기 심한 요
동과 함께 급정거를 했다. 승객들이 한꺼번에 앞으로 쏠렸다. 짜증섞인 중얼
거림들이 쏟아지고, 별일 아닌 듯 다시 조금 움직이는가 싶더니 한 번 더 심
하게 급정거를 했다. 버스 앞쪽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술렁거렸
다.

바깥 상황을 내다보니 좌측 차로에서 흰색 코란도가 차선을 넘어 버스를 

로막고 있었고 버스의 좌측 모서리가 코란도의 옆구리를 찌르고 있었다. 이
어 코란도 기사가 내리더니 버스 운전석 차창 바깥으로 다가서서 한바탕 욕
설을 쏟아놓는다. 

“큰 차를 몰면 작은 차는 눈에 안 뵈냐? 그렇게 몰아붙여도 되는 거야 뭐
야?”

점잖은 캐주얼 복장의 50대 중년이었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눈에 핏
발이 서있는 ‘전투태세’였다. 만만치 않은 버스기사도 되받아 치면서 한바
탕 공방이 벌어진다. 

“왜 욕이냐? 너 나이가 몇이냐? 돈 많으면 쳐봐라.” 
본래의 쟁점이 뭔지 모를 지경에까지 이르러 시뻘건 악의적 감정의 파편들
이 튄다. 죄 없는 승객들은 시계를 봐가면서 사태가 빨리 수습되어 5월의 첫
날부터 지각하지 않기를 바라며 발을 동동구르고 있었다.

옆 차선에서 멀쩡하게 잘 가고 있는 자기 차 앞으로 버스가 무리하게 끼어들
기를 한 것이 몹시 기분이 나빴나 보다. 그 코란도는 애써 버스를 추월해서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화풀이하자고 수십명 승객들 출근길을 막아서야 되
겠는가’고 코란도 기사를 향해서 한 마디 쏘아주고 싶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
시 저 표정이, 저 눈동자가 마귀의 그것이 아닐
까? 바로 조금 전에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배웅을 받으며 즐거운 마
음 선한 표정으로 집을 나섰을 텐데 … 집에서는 자상한 남편 존경받는 아버
지일 텐데 … 무엇이 저 사람을 저토록 돌변하게 만들었을까? 멀쩡한 얼굴
에 어떻게 저런 표정을 올리고 입에 저런 막말을 담을 수가 있을까? 필시 본
래의 성품이 아니리라. 순간적으로 마귀가 분을 품게 하고 혈기를 부리게 하
여 선한 성품을 망각하게 하였으리라 … 혹시 내 얼굴에도 저런 표정이 나
올 수가 있을까? 혹시 그런 적이 있었을까? 몇 번쯤 그랬던 적이 있는 것도 
같다. 순간적으로 기도가 마음속에서 터져 나왔다.

“주여! 이후 절대로 분냄의 마귀가 얼씬거리지 못하게 늘 하나님의 성품을 
품게 하여주소서!” 

약 10여분 옥신각신하던 끝에 결국 경찰을 부르기로 했고 승객들은 다음 차
로 옮겨 타라고 했다. 마침 반쯤 비어 있는 버스가 왔고, 타고있던 버스에
서 내린 승객들이 서둘러 다음 차로 옮겨 탔다. 그 순간 희비가 엇갈리는 상
황이 벌어진다. 나를 비롯해서 서있던 승객들이 더 빨리 하차할 수 있었기
에 자
리를 잡을 수 있었고, 자리에 앉아 있다가 뒤늦게 내린 승객들은 자리
가 없어 서서 갈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기구한(?) 반전이었다. 덕분에 자리에 앉아서 편안한 자세로 조금은 
미안한 생각에 고개를 더 깊숙이 책에 집중했다. 지체되었던 루즈타임 때문
에 결국 지각을 했지만, 그래도 내겐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마귀의 얼굴도 보면서 내 얼굴을 돌아볼 수 있었고, 서있던 자들과 앉았던 
자들의 기구한 반전의 의미를 생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