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16) 기도 명령_정창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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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16)

요한복음 14:13-14; 16:23-24

기도 명령

정창균 목사/ 합신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막동이 녀석을 낳고 돌이 가까워 올 때였습니다. 저는 목수안수 일 년 차의 
부목사로 그리 크지 않은 한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꼭 새벽기도 갈 시간이면 일어나서 울어 제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
는 새벽기도를 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기 때문에 새벽기도 못나간 아내 

우리는 부부가 함께 새벽기도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불같았습니다. 아이 걱
정도 걱정이지만 셋방살이하는 주제에 그 새벽에 아이를 그렇게 울려대면서 
집을 비운다는 것은 감히 엄두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시작하
였습니다. “이 아이가 새벽시간에 깨지 않게 해주소서. 그래서 부부가 함
께 안심하고 새벽 기도를 다니게 해주소서.” 한 달 남짓 기도했는지 모르겠
습니다. 하루는 은근히 베짱이 생겼습니다. “하루 새벽 운다고 아이가 죽겠
느냐, 하루 새
벽 아이 울렸다고 쫓겨나기야 하겠느냐… 그냥 한번 가보
자.” 한 달 기도 후 아내와 의기가 투합하여 하루 새벽에는 그냥 교회로 가
버렸습니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궁금해하며 허겁지겁 돌아 온 우
리 부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 녀석이 물에서 건져낸 것처럼 축축하게 젖
은 기저귀를 빼서 머리맡에 던져 놓고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그 비싼 종이 기저귀를 쓴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형편이
었습니다. 
아이 허리에 노란 고무줄을 매어놓고 거기에 거의 영구적인 베 기저귀를 갈
아 끼워가며 쓰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중요한 일과 가운데 하나도 바구니 가
득 쌓인 젖은 기저귀를 빨고, 그것을 방안 가득히 줄을 치고 널어서 말린 다
음 정해진 방식대로 접어 바구니에 차곡차곡 쌓아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데 이 녀석이 기특하게도 그 젖은 베 기저귀를 빼어 자기 머리맡에 던져놓
고 계속 잠을 자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소원한 대로 새벽기도를 함께 다닐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미어지게 감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좋
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그렇게 담대해졌습니다. 그 이후 우리는 
마음놓고 새벽 기도회를 같이 다녔습니다. 저야 어차피 거의 일년 내내 새벽
기도회 인도를 하다시피 하였으니까 당연히 다니는 새벽 기도 길이었지만, 
제 아내와 같이 가는 그 길은 또 다른 힘과 재미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알레르기 비염이 심해서 새벽마다 두루마리 화장지 한통씩을 품에 안
고 새벽기도를 다녔지만 그래도 흐르는 콧물에 젖은 수북한 화장지를 양손 
가득 들고 오면서도 아내는 부부가 함께 다니는 새벽기도를 즐거워하였습니
다. 돌이 임박한 어느 때부터 우리는 아이 머리맡에 갈아입을 내복 아랫도리
를 놓고 새벽 기도회를 갔습니다. 돌아와 보면 녀석은 젖은 기저귀를 빼놓
고 머리맡의 옷을 다리에 낀 채 잠을 잤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믿기지 않는 
사실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하시는 거의 모든 일들이 우리 같은 인생들에게는 믿기지 않
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감동이 되고, 그래서 재미가 있습니다. 이 일을 계기
로 우리는 그렇게 많은 복을 누리는 부부 큐티를 시작하는 보너스를 얻게 되
었습니다.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돌아와서 찻상에 우유를 탄 
인삼차 두 잔
을 놓고 마주 보고 앉아서 성경을 읽고, 서로의 생각과 마음 나누기를 시작
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세 아이를 차례로 돌아가며 각각 머리맡에 앉아
서 자는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고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하곤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에 의하면 예수님은 붙잡히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긴 고별설교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 15, 16장은 바로 예수님의 그 마지막 설교입니
다. 그런데 이 마지막 설교 각 장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
의 응답을 반복적으로 약속하셨습니다. 
14장에서는 우리의 기도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영광을 얻으시게 하는 일
과 직결되어 있는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별설교의 마지막 부분에
서 다시 기도응답을 약속하시면서 기도가 우리의 충만한 기쁨과 직결되어 있
는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도응답에 대한 약속을 깊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단순히 기도에 대
한 응답의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기도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기도
가 명령이라는 사실은 의지적으로 결단해야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이기
도 합니다. 기도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기도가 십자가이거
나, 무거운 짐인 것도 아닙니다. 

수많은 훈련 필요로 하는 기도

사도 요한에 의하면 기도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결정적인 실마리
이며(14:13), 우리에게는 충만한 기쁨 가운데 있게 하는 은혜의 수단인 것입
니다(1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