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균 칼럼>
고통의 때
비행기 한대가 거대한 건물을 향해 돌진하더니 화염을 일으키며 반대 편으
로 터져 나왔습니다. 조금 있더니 다른 비행기가 옆의 또 다른 건물을 향하
여 고개를 쳐박 듯이 들어가더니 불꽃 연기를 일으키며 반대편으로 터져나와
사라져 갔습니다. 잠시 후, 화염과 구름연기로 덮여가던 그 큰 건물이 땅속
으로 빨려 들어가 듯 거대한 구름 먼지를 일으키며 그대로 가라앉아 버렸습니
다. 그리고는 아수라장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폐허가 되어버린 그 곳에
는 무너져내린 건물의 철골만 마른 뼈다귀처럼 앙상하게 서 있었습니다. 만
여명의 사람이 죽었을 것이라하였습니다. 지난 주간, 온 세계의 수 많은 사람
들이 수도 없이 반복해서 TV에서 본 장면이었습니다.
흔해 빠진 만화영화의 한 장면도 아니었습니다. 컴퓨터 게임의 한 장면도
아니었습니다. 지구로 쳐들어 온 외계인과 벌이는 우주 전쟁 영화의 한 장면
도, 스타트랙의 한 장면도 아니었습니다. 바다 건너 미국 땅에서 실제로 벌어
진 실제 상황이었
습니다. 원한과 분노와 야망으로 똘똘 뭉친 집단의 과격 분
자들이 제 목숨과 맞바꾸면서 벌인 참혹하고 끔찍한 발악이었습니다.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의 잔학함의 끝은 어디인
가? 이 의문이 탄식처럼, 비명처럼 한 주간 내내 가슴을 맴돌았습니다. 어느
철학자는 인간 속에는 천사와 악마가 함께 있다는 말을 하였다지만, 그 테러
현장이야말로 악마적 발악의 절정인 듯 하였습니다. TV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그 처참한 모습을 지켜본 온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알게 모르게 각
인되었을 인간에 대한 배신감과 깊은 상처와 불신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불길처럼 치솟아 오르는 복수심에 찬 분노와 그로 말미암아 나타날 개인적,
사회적 병리 현상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수천 명의 시민들을 그 안에 담
은 채 맥없이 무너져 내린, 절대 안전을 자랑했다던 110층 짜리 거대한 쌍둥
이 빌딩의 잔해 앞에서 본능처럼 고백하게 되는 인간의 왜소함과 무력감과 깊
은 좌절감은 어떻게 딛고 일어설 수 있을까? 또 함께 TV 앞에 앉아서 그 악하
고 참혹한 인간의 치부를 함께 보아버린 온 세계의 어린 아이들이 받
았을 충
격과 정서적인 악영향은 어떻게 해소 할 수 있을 것인가? 한 순간은 충격으
로, 한 순간은 아픔으로, 그리고 분노로, 절망으로, 허탈함으로, 그리고 어
느 순간에는 무감각으로, 온갖 생각과 감정이 혼란스럽게 밀려왔다 밀려갔습
니다.
그러다가 문득 사도 바울이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하신 말씀 몇 마디가 떠
올랐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디모
데후서 3:1). 예수님이 오실 때를 기다리며 사는 이 말세의 때에 경험하게
될 고통에 대하여 알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는 그 고통의 양
상을 다양한 모습으로 제시였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
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
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
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
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
은 부인하는 자니 이와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2-5절). 사도 바울
이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는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삶의 모습들을 곰곰이 살펴
보면 결국 고통의 궁극적인 원인은 하나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지독
한 이기심”과 “자기중심”, “자기 최우선”의 인생철학인 것입니다. 그래
서 사도는 권면합니다. “네가 돌아서라!” 이 시대에 끝없는 고통을 만들어 내
는 그러한 철학에 대하여 등을 돌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서라는 말씀일 것입
니다. 그렇지 않는 한 우리도 본질적으로는 그 테러리스트들과 다름없는, 고
통을 만들어내는 사람들로 머물고 말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동생이 자신의 안전을 전하는 메일을 보내면서 끝에 덧붙인
한마디가 제게는 위로와 소망이 되었습니다. “24시간 내내 테러현장을 방송하
면서도 화면 밑에는 어느 지역은 어느 교회, 어느 지역은 어느 교회, 지역별
로 교회를 소개하면서 그 교회에서 기도회가 열리니 모두 기도회에 참여하라
는 자막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며 역시 미국은 미국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