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제2장 3항)_김병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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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제2장 3항)

 

< 김병훈 목사, 화평교회, 합신 조직신학 교수 >

 

 

<제2장 3항> “신성이 단일한 가운데, 본질과 능력과 영원함이 동일하신 세 위격들이 계시니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부 하나님은 다른 어떤 분에게서 나시거나 나오시는 분이 아니시며,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에게서 영원 안에서 나셨으며,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에게서 영원 안에서 나오셨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은 구원에 합당한 믿음에 필수적인 내용”

 

성령 하나님께서 오직 성부 하나님에게서만 나오시는지, 아니면 성부와 성자 하나님에게서(filioque) 나오시는지에 대해서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는 여전히 이견을 보이고 있습니다. 15세기 플로렌스 회의(1439년)에서 성령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을 통해 성부 하나님에게서 나오시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으나, 그 후로 여전히 서방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시는 것으로, 동방은 오직 성부에게서만 나오시는 것으로 주장을 합니다.

 

서방교회 전통 안에 있는 개혁파 신학과 신앙고백서는 성령 하나님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시는 것으로 고백을 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성부와 함께 성자에게서 보냄을 받으시며(요 16:7), “아들의 영”이라 일컬음도 받으시며(갈 4:6), 성부와 함께 또한 성자에게 들은 것을 말하시며(요 16:13), 예수님께서 내쉬는 숨에 의하여 제자들에게 주어지셨기 때문입니다(요 20:22).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이와 같이 세 위격들 상호간의 내적인 관계에 따라 구별이 됨과 동시에, 또한 세 위격들이 피조계를 향하여 행하시는 사역의 질서와 관련하여 구별이 됩니다.

 

성부께서는 성자와 성령의 사역의 기원이시며, 자신으로부터 자신의 뜻을 행하시는 반면에, 성자는 성부의 뜻을 행하시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는 뜻을 행하십니다. 성부께서는 성자와 성령을 보내시지만, 자신은 성자와 성령에 의하여 보내심을 받지는 않으십니다. 성자는 성령을 통하여 일하시며 성부로부터 성도들의 심령에 성령을 보내십니다. 하지만 성자 자신은 성령에 의하여 보내심을 받지 않으십니다. 반면에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십니다. (요 1:3; 5:19; 8:42; 14:26; 15:26)

 

이처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서로 구별이 되시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신성이 단일하며, 능력과 영원함이 동일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유의해야할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다는 말을 마치 세 사람이 있는 경우에 그들이 서로 인간이라는 동일한 본질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혹은 마치 부분들이 합하여 하나를 이루는 것처럼, 세 위격들이 모여서 하나의 신적 본질을 이루는 것처럼 생각하면 이 또한 잘못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신적 본질에 있어서 완전히 일치합니다. 다만 각 위격이 서로의 관계들 안에서 구별이 될 따름입니다.

 

그래서 “신성이 단일한 가운데, 본질과 능력과 영원함이 동일하신 세 위격들이 계시니”라는 말로써 신앙고백서는 각 위격의 차이가 어떠한 의미에서도 본질의 차이가 아님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삼신론의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단일한 신성 안에 있는 위격의 분명한 구별은 한 위격이 다양한 모양과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성부가 성자로 나타나시고, 또 다른 때에는 성령으로 나타나신다고 말하거나, 마치 한 남자가 아들, 본인, 아버지의 세 역할을 감당하는 식의 설명 또한 매우 잘못된 것임을 유념해야 합니다.

 

삼위일체의 고백은 모든 신자들의 신앙고백 가운데 꼭 있어야 할 항목입니다.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로 계신다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모르거나, 무시한다면, 구원을 받기에 합당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는 표현도 아니며, 더욱이 그것은 누구라도 이해할 수 없는 매우 신비롭고 어려운 교리이기 때문에 굳이 그것을 구원에 합당한 신앙고백의 항목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까? 개혁파 신학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다음의 이유를 들어 그렇다고 답을 합니다.

 

우선 주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고 말씀하셨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요 또한 영생”(요일 5:20)이십니다. 또한 신앙고백과 더불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명하셨습니다(마 28:19).

 

이러한 말씀들은 구원을 받는 신앙과 관련하여 단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시며 의로우시며 거룩하신 분이시라는 것과 같이 단지 그가 어떠한 분이신가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교훈합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는 자는 마땅히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며(요 5: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습니다”(요일 2:23).

 

뿐만 아니라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는다는 것은 몇 가지 중요한 영적 사실들에 대한 고백을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 그래서 그 아들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 그가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죗값을 치루셨다는 것, 그가 부활하시고 또한 승천하셨으며 다시 오실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가 보혜사 성령 하나님을 보내셨으며, 하나님 우편에서 중보기도를 하신다는 것 등입니다. 따라서 구원의 복음을 믿는 것은 이러한 영적 사실들을 믿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아버지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듯이 예수님도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을 뜻합니다.

 

이상의 설명을 기초로 하여 개혁파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이 구원에 합당한 믿음에 필수적임을 주장합니다. 이 때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한다는 것이 한 하나님이 어떻게 세 위격으로 계실 수 있는 것인지, 세 위격들의 상호관계는 어떠한 것들인지 등에 대해서 알고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천사라도 다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 구원받는 믿음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삼위일체라는 표현이 성경에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고 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앙을 부정하거나 소홀히 하는 식의 주장은 다 그릇된 것이므로 교회 안에서 용납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모든 구원받은 성도는 마땅히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찬송하며 영광과 존귀를 합당히 돌려드려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