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행 길에서_윤순열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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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행 길에서

< 윤순열 사모, 서문교회 >

“결실 없는 가을은 낙엽지는 쓸쓸한 가을에 지나지 않을 것”

깊어가는 가을에 남편과 함께 가을 산행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산 입구에 
들어서니 붉은 단풍과 노오란 은행잎들이 우리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습니
다. 

때늦은 가을 산행 다녀와

몇 일 전에 성경공부 모임에서 갔던 내장산보다 훨씬 더 아기자기한 모습과 
한층 고운 단풍들로 인해 이곳이 더 아름다웠습니다. 멀리가지 말고 진작 이
곳에 올걸, 지난 주에 같이 갔던 일행들이 생각나며 같이 보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낙엽들은 가지가지 형형색색으로 달랐습니다. 밑에 깔린 소나무 낙엽 위로 
붉고 노란 떡갈나무 잎들, 밤색 빛이 도는 도토리나무 잎들, 붉은 색의 단풍
잎들이 다양한 카펫을 깔아놓은 듯 아름답고 멋스러웠습니다. 숲속은 로마에
서 보았던 호화로운 성 베드로 성당 내부보다 더 찬란하였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이리도 멋있는 예술가이실까. 세상에 어떤 작가가 이렇게 
멋있는 작품을 계절별로 만들어 놓을 수 있단 말인가. 골짜기 숲에 수북하
게 쌓인 형형색색의 낙엽을 보니 그냥 그곳에 머무르고 싶었습니다. 세상사 
온갖 시름 잊어버리고 낙엽과 함께 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일순간 세상에 
복잡 다양한 일상에서 놓여지는 듯 마음이 평안하였습니다. 
주님을 따르던 예수님의 제자들도 세상의 온갖 풍파에 시달리던 중 변화 산
에서 변형된 예수님의 광채나는 모습을 본 순간 베드로가 주님께 ‘랍비여 우
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되’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피하고 싶은 현실 속에 주님의 신비한 모습은 그들의 마음을 온통사로 잡았
을 것입니다. 
내려오는 길에 잘 단장된 무덤을 보았습니다. 큼직한 대리석의 무덤을 보니 
반갑게도 모 장로님의 묘비였습니다. ‘1910년 12월 24일생 모태교인으로 배
재학당재학시절 이화학당 누님 마리아와 광주학생 사건 때 옥고를 치르고 임
시정부 때는 교육 사업에 기여하고 상해 임정 민락 동지들과 백범등 형명가
로부터 인격을 높이 평가받다. 38세에 제헌 국회의원을 
비롯 유엔 총회 한국
대표단 국회운영위원장 교회장로로서 인도주의적 전형이요 불의 앞에서는 사
자 형이요 웅변에는 일인자였다. 세계정세와 미래에 밝고 정치인의 사표였
다. 무궁화 훈장을 받다. 1972년 12월 24일 아침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성
역에 안장하다.’ 
대략 그분의 묘비입니다. 격동의시기에 태어나 짧은 생애였지만 많은 일을 
하였고 빛나는 업적을 남기신 생애 같았습니다. 저물어 어두워진 산행 길에 
묘비의 주인공으로 인하여 가을 산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문득 저희들의 생애를 돌아봅니다. 더 나은 내일을 향하여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는 저희들의 목회사역을 돌아보았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목회자
로 소명받아 무엇을 얼마나 남겼던 생애였던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은 이생애에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우리의 묘비에 무엇
을 기록 할 수 있을 것인가?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흘러가는 세월 속에 시간을 허비하여 무엇 하나 제대로 남긴 것 없이 허송세
월 하지는 않았는지, 무리한 욕심을 목표로 하여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양 착
각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우리는 언젠가 누구나 공평하게 무덤을 남기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이 있
습니다. 봄날의 곱고 화려 했던 꽃도, 여름에 무성했던 숲도 스산한 찬바람
과 함께 단풍 옷입고 낙엽되어 떨어 질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의 생애가 화려하고 찬란하게 수많은 업적을 남길 순 없어도 진실하고 
충성스럽게 작은 일이라도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것이며 우리의 묘비도 그리 부끄럽지 않을 줄 압니다. 
우리가 지금 가는 길이 힘들다고 포기하고 주저앉아 버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고 무엇이라고 말할 것이며 귀중한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를 보고 
무엇으로 교훈으로 삼을 것인지 생애의 허리끈을 다시 매어봅니다. 
가을이 아름다운 이유는 울긋불긋 어여쁜 단풍이 있어서만도 아닌듯 싶습니
다. 봄에 싹을 틔워 봄여름을 지내는 동안 온갖 풍상을 견디어 낸 후 맺어놓
은 풍성한 결실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풍성한 결실이 없는 가을은 한
낱 낙엽지는 쓸쓸한 가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갖 열매가 풍성
하기에 가을은 더욱 빛이 납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생애의 풍성한 열매로 인하여 주인되신 주님 앞에 부
끄럽지 아니하며 인생의 흔적인 묘비 앞에 충성된 사역자의 흔적을 남겨놓
고 싶습니다. 

인생의 열매 부끄럽지 않길

들뜬 마음으로 올랐던 가을 산행 길은 낙엽지는 산길을 내려오면서 보았던 
묘비로 인하여 숙연함 속에 저희들의 인생길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