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형식과 내용
김병혁 목사_에드먼톤 갈보리 장로교회 협력목사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사물에는 저마다의 형식과 내용이 있습니다. 가령
사람을 예로 들어 봅시다. 사람의 신체 모양을 ‘형식’이라고 한다면, 그
형식이 가진 의미를 설명해주는 내적 요소를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
다. 한 사물이 지닌 형식과 내용은 다른 사물과의 차이점을 나타내주는 표지
가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땅에 교회를 허락하셨다
고 할 때에는 반드시 교회만이 지닌 형식과 내용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
다.
하지만 교회가 갖는 형식과 내용이 반드시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갖는 방식
과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기원과 본질에 있어서 세상의 어
떤 것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
약 ‘교회란 무엇인가’하는 물음을 던지면서도 정작 교회의 교회됨을 이루
는 그 형식과 내용의 독특성을 간과한다면, 교회건물 위의 십자가의 유무
(有
無)와 교회당에 모인 회중들의 숫자와 세상에 대한 교회의 번성과 영향과 상
관없이 더이상 참된 교회가 아닐 수 있다는 뼈아픈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관한 몇 가지 오해들
흔히 교회의 형식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교회의 외형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교회를 눈에 보이는 건물(시설물)과 동일시하려는 경향은 어제, 오
늘의 일이 아닙니다. 굳이 교회를 성당(聖堂) 혹은 성전(聖殿)이라고 하기
도 하고 심지어 교회 안에서 쓰이는 물건들조차 성물(聖物)이라고 높입니
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이미 예수님과 종교개혁자들로부터 정죄받은 판단
입니다.
유대인들이 눈에 보이는 헤롯성전을 진정한 교회라고 생각하였을 때, 주님
은 자신의 몸이 참된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천주교가 베드로 성당 건
축을 핑계로 면죄부를 판매하였을 때 루터는 성도가 세워야 할 진정한 성전
은 건물로서의 베드로 성당이 아니라 비진리로 인해 무너져 내린 영혼(마음)
의 성전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국 기독교 안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교회건물의 대형
화와 고급화 집착 현상은 종교개혁 이전의 참담했
던 영적 형편으로 돌아가
는 일일뿐더러 교회의 주인되시는 주님의 요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저급한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교회를 가리켜 믿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신앙적 모임(공동체)
으로 규정합니다. 교파와 신앙고백과 상관없이 신앙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지면 누구든지 교회를 세울 수 있고, 또한 예배만 드릴 수 있다면 교회가 되
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특히 선교단체나 해외로 이주한 교인들에게서 자주
목격되는 신앙의 단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교회의 형식에 대한 지
나친 편견과 교회의 본질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성경은 그 어느 곳에서도 교회의 기초와 근거를 사람의 행위에 둔다고 말하
지 않습니다. 교회를 세워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성도의 신앙 행위(열심과
수고와 헌신)는 열매의 성격이지 교회를 구성하는 본질의 내용은 아닙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근원
적 선택과 부르심에 있습니다. 즉 사람의 모임으로서의 교회가 있기 이전에
어떤 이들을 교회의 구성원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과 의지가 앞섭니다.
이것은 교회
의 시작과 마지막이 오로지 하나님 안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을 의
미합니다.
마지막으로 교회에 대한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부정적인 인식 중 하나는 교회
를 사람들의 종교적인 욕구와 만족을 채워주는 장소나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
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신앙과 세속주의가 결탁할 때 매우 보편적으로 나타
나는 신앙 현상입니다. 이들은 교회(목회자)를 통하여 얻게 되는 개인적인
복과 번성과 성공을 자신들의 신앙적 노력의 대가로서 얻게 되는 열매로 생
각합니다. 개인적인 종교적 성취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형태의 신앙도 가능하
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성공과 복받음으로 나아가는 지성
소이며 복음은 현실적인 요구들을 이루어주는 적실한 수단일 뿐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신앙은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내어쫓고 많
은 권능을 행하였지만 마지막 날에 주님으로부터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
지 못하리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는 주님의 엄
중한 심판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 주어진 영
광스러운 능력과 권능을 인간의 육신적인 이기심과 만족감을
채우는 데만 허
비하는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복음)을 가장 값싸게 취급하는 가장
어리석은 자와 다름없습니다.
말씀만이 교회를 살리는 유일한 대안임
참된 교회의 형식은 외형, 사람들의 모임 혹은 종교적 열망으로 대신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형식이란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이루어 가는 영적 기관
으로서 이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구별된 자태를 가리킵니다. 이 자태가 얼마
나 바르고 진실되게 드러나는가에 교회의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위해 교회에 담보해 주신 것이 바로 ‘하나
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내용 삼지 않고는 결코 교회의 어떠한 형식도
제대로 드러낼 수 없습니다. 교회를 이해함과 세움에 있어서 말씀은 유일한
은혜의 도구이며 방편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교회에 대한 염려와 안타까움이 있습니까? 진정 교회의
교회다움이 회복되기를 원하십니까? 진리만이 살아 역사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답은 오직 하나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되 오직 성
령의 뜻을 좇아 정직하고 순전하게 그 길로 돌아가는 일 외에 다른 대안이
없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