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벌 _조병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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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벌

조병수 교수_합신 신약신학

내 기억 속에 소풍은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소풍 가서 어느 시간이 되면 
반별로 모여 노래자랑을 했는데, 그것은 나에게 거의 죽음과 같은 시간이었
다. 대부분 다른 아이들이 멋들어지게 유행가를 불러제끼지만 나는 가사와 
곡조를 다 외우는 유행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은 자녀들이 유행
가 부르는 것을 아주 싫어하셨다. 

유행가 싫어하신 부모님

특히 우리 부모님은 우리가 가벼운 욕설이라도 입밖에 내놓는 것을 듣는 날
에는 시쳇말로 다리몽둥이가 부러질 정도로 매를 치셨다. 그런 행동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부랑자들이나 하는 것이라며 야단을 맞고 또 야단을 맞았
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장난삼아서라도 욕하는 시늉을 내는 것조차 아예 
꿈도 못 꾸어보았다. 유행가도 그렇거니와 재미로 하는 욕이라도 여전히 어
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영향 때문이라고 믿는다. 
욕하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야단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로 범죄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책망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욕하는 것 
때문에 크게 야단을 맞아본 사람은 욕하는 것을 두렵게 생각한다. 이와 비슷
하게 죄를 짓는 것 때문에 크게 책망을 받아본 사람은 죄를 짓는 것을 두렵
게 생각한다. 
비록 이것이 범죄를 방지하는 데 소극적인 방법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까닭에 범죄의 억
제책으로 범죄를 체벌하는 법적인 조치가 여전히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
것은 사회가 존재하는 한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며, 더 나아가
서 사회가 존재하는 한 이런 법적인 조치는 한층 더 많아질 것이 분명하다. 
사도 바울은 장로에 대한 송사를 말하면서 “범죄한 사람들을 모든 사람 앞
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딤전 5:20)고 말한다. 사
도 바울에 의하면 범죄에 대한 책망은 당사자가 다시 범죄하는 것을 두렵게 
생각하게 만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범죄를 두려워하는 효과를 일으킨
다. 
실제로 장로가 범죄를 저질렀든지 아니면 어떤 사람이 결백한 장로를 무고
(誣告)하는 범죄를 저질렀든지, 그런 
사람을 책망하는 것은 당사자뿐 아니
라 주위의 사람들에게 범죄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책망이 범죄를 예방하는 여러 가지 지름길 가운
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도 바울의 말에 비추어 볼 때 범죄를 책망하지 않는 것은 큰 문제이다. 오
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구조는 점점 범죄를 책망하지 않는 분위기로 나
아가고 있다. 나나 너나 모두 비슷한 죄를 짓고 있다는 공범의식 때문에 범
죄를 책망하지 않은지는 이미 오랜 일이 되었다. 또한 남의 범죄를 책망하다
가 도리어 앙갚음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이런 분위기를 자극한다. 
하다 못해 범죄를 체벌하면 자신의 인기가 떨어질까 염려하여 범죄 행위를 
눈감아주는 일이 정치권을 비롯하여 여러 분야에서 버젓이 활보를 하고 있
다. 또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범죄가 폭로되었을 때 자신이 범죄 행위를 눈
감아 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려는 얄팍한 실리주의 때문에 체벌을 기피
하는 경향도 적지 않은 듯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현상이 사회에만 팽배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도 마
찬가지로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는 점이다. 사회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교회
마저 범죄를 책망하지 않는 상태로 빠져들었다는 것은 너무나도 한심스러운 
것이지 않을 수 없다. 교회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신자들의 범죄를 덮어
버린다. 
물론 범죄를 지적 받으면 회개하기는커녕 도리어 교회를 비방하면서 다른 교
회로 가버리는 교인들의 저속한 행동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범죄
를 책망하지 않으니 교인들마저도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상한 속물들이 되
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죄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그런 사람들을 성도라고 
부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책망 사라지고 있어

쌍스러운 행동을 꾸짖지 않는 시대, 범죄를 책망하는 것을 주저하는 시대, 
야단치면 도리어 눈에 쌍불을 피고 덤비는 시대, 이런 시대에서 어쩔 수 없
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