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변함없는 하나님의 선하심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바울 사도는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 5:6)고 지적한 바 있다. 이것은 자신의 생애를 허무한데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신 목적을 이루어드리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일종의 살아있는 죽음과 다를 바 없다.
야고보는 하나님을 가리켜 야고보는 ‘빛들의 아버지’라고 말한다(약 1:16-17).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빛들의 창조주 혹은 근원이 되신다는 의미를 가진다(욥 38:28). 때문에 하나님에게서는 결코 어두움을 찾을 수 없다. 하나님은 그분이 창조하신 천체들과 같지 않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빛과 어두움의 양면을 갖고 있지 않는 분이시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변함없으심은 우리를 택하신 목적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 1:18). 여기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하나님은 우리를 새로 낳아 영생을 얻게 하셨다. 때문에 신자들은 이 측량할 수 없는 복을 자신에게서 깨닫고 있는 만큼 보편적으로 입증된 하나님의 선하심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배격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이 아닌 어떠한 외부적인 세력의 영향도 입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지 및 경륜과 인간의 공로에 대한 대조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오직 하나님은 자신의 선하신 뜻 때문에 우리를 새로 낳으셨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에 속한다. 그의 순전한 은혜에 따라 우리가 진리에 대한 지식의 빛을 받게 되었고 우리의 소망이 이 선택과 일치하게 되었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입양을 받았다(엡 1:4-5).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값없이 부르셨음을 전제한다.
야고보는 신자들에게 하나님 보시기에 더러운 모든 것을 내어버리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 말은 더러운 옷처럼 벗어버리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려는 것이나, 자기 자신의 도덕 기준을 설정하여 따르려는 것이나,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려는 인간의 모든 시도는 이미 실패한 것과 같다(사 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