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석의북카페| 그리스도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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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십자가

존 스토트 지음/IVP/558쪽/1998년 개정판

서평:조주석/ 합신출판부 편집실장

서양은 우리의 현실과 다르다. 기독교의 세속화가 깊고 배교적 요소도 강한 
서양인 반면 우리는 그런 특징들이 옅고 복음적인 세력이 주류를 이룬다. 미
숙은 하겠으나 서양보다는 우리의 기독교가 더 생동적이다. 이처럼 서로 다
른 삶의 정황으로 인해 설교나 글을 쓰는 것도 그 접근이 다를 수 있다.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분명 양서(良書)이지만 접근의 차이로 그 
논의는 좀 낯설 수 있다. 

이 책 전체의 핵심어는 ‘십자가’이다. 이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한
다.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다. 이 그리스도의 죽
음과 부활이 복음의 기원이요 그 자체요 핵심이다. 특히 사도 바울은 이방 선
교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에 좀더 초점을 맞추어 복음을 선포했다. 대속의 죽음
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얻는 ‘칭의’, 하나님과의 ‘화목’, 하나님의 사랑받
는 ‘자녀 됨’ 등에 무게가 더 실린다. 

이러한 바울의 복음은 서방 교회의 신앙과 신학에 대대로 스며들어 내려왔
고, 16세기 종교개혁은 이를 왜곡시킨 서방 신학을 바로잡아 신앙의 물꼬를 
바르게 해 놓았다. 이런 역사 흐름에서 보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철저
히 서방 교회의 신앙 전통을 고수한다. 복음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자
꾸 서진해서 로마 교회를 발판으로 유럽에 확산되었고 그 복음은 북미로 전파
되어 마침내 선교지 한국 교회도 서게 된다. 우리는 이런 서방 교회의 전통
에 서 있으며 앞으로도 그런 역사 흐름을 타고 미래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복음 이해와 그 신앙에서 우리는 얼마나 깊이 들어가 있는지 의문이
다. 물론 이전보다는 복음 이해가 더 부요해진 좋은 양상도 여기저기서 보이
기는 하지만 아직도 그런 기색이 전 교회적인 색체는 아닌 것 같다. 왜 그럴
까? 교회를 맡아 말씀을 전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
이 옅은 까닭이라고 조심스레 어림해 본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좋은 
타산지석은 로이
든 존스 목사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안목과 설교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었다. 그는 사역 초기의 설교에서 중생은 강조했지만 그리스도의 속
죄와 그의 공로는 전하지 못했다. 어느 날 밤 남웨일즈의 브리젠드에서 설교
를 마쳤을 때 그곳 목사는 그의 설교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공로’에 대
한 언급은 거의 없다고 도전했다. 즉시 그는 자신이 즐겨 찾던 헌 책방으로 
발을 옮겨 속죄에 관한 대표적인 책 두 권을 요구했고, 데일(R.W. Dale)이 쓴
『속죄』(The Atonement, 1875)와 데니(James Denney)가 쓴『그리스도의 죽
음』(The Death of Christ, 1902)을 소개받는다. 그가 이 책에 얼마나 깊이 
몰입했던지 점심과 차 마시는 것까지 잊자 그의 아내는 의사를 불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걱정할 정도였다. 

이 책들을 다 읽고 난 존스 목사는 ‘복음의 참된 핵심과 기독교 신앙의 깊은 
의미’를 발견했노라 외쳤고, 그 이후로 설교의 내용도 설교의 능력도 바뀌었
다. 이러한 일화를 지은이는 책 서문에서 아주 자랑스럽게 우리에게 소개한
다.

물론 본서는 십자가의 복음
이 무엇인지 아주 치밀하고 깊게 다룬다. 최근에 
제기된 신학 문제뿐 아니라 역사 속에 묻힌 책들도 다시 꺼내 논의와 토론을 
거쳐 복음 이해를 더 풍부히 제시하려고 애쓴다. 모두 13장과 결론으로 이루
어졌고 크게 4부로 나뉜다. 그리고 이런 물음들을 다룬다. 과연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예수 자신이나 사도들이나 그 이후 온 세계 교회에서 중심을 차지하
는 중요한 사실인가(제1부)? 우리의 죄 용서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
존해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제2부)? 그리고 십자가로 성
취한 내용은 무엇인가(제3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하여 스토트는 자신의 입장
을 딱 견지하며 개혁신학에서 비켜선 신학자들일지라도 취해야 점이 있으면 
조심스레 들이댄다.

이러한 물음들을 하나하나 대답한 다음, 제4부에서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철저
히 바뀐 우리의 모든 관계가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십자가는 십자가의 공동
체 곧 교회를 탄생시켰고, 교회는 성만찬을 통해 십자가의 은혜를 하나님 앞
에서 경축하며, 권력을 쥔 자가 아닌 섬기는 자라는 혁명적인 태도 변화를 그
리스도인으로 갖게 하며, 원수까지 사랑하게 하
며, 고난을 통한 영광에 이르
게 한다. 십자가에는 이런 능력이 있다.

이 만한 두께의 책(원서는 383쪽, 역서는 558쪽)을 서양의 상황은 절실히 요
구했겠으나 사실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영적 투쟁이나 신학 논쟁에서 서양만
큼 역사 대대로 얼키설킨 복잡한 전통도 없고, 또 정통 기독교를 옹호하거나 
반대할 목적으로 좌우에 선 신학자들이 자신들의 정치한 신학을 주장해야 할 
첨예한 대립도 서양만큼 드세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책을 끈질기게 
읽어내노라면 자신이 들인 시간만큼 거둬들일 열매도 짭짤할 것이다. 촘촘히 
읽고나면 어렴풋하던 구원의 신앙도 더 두터워지고, 어렵기만 하던 바울 서신
도 더 환히 보이게 되기를 기대한다. 구도자에게는 결코 편한 길이란 그 앞
에 없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