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농목회 참석기> 섬기는 교회, 주는 교회_이은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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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교회, 주는 교회

< 이은국 목사, 용연교회 >

 

섬김의 목회와 주는 목회를 실천하는 논어촌 교회 모범 보여줘

      

김천시 남면 섶밭길을 접어드니 잔잔한 물결 위에 떠 있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 늦가을 가랑비를 흠뻑 머금은 단풍나무 한그루가 곱고 화려한 자태를 드러내고 작은 마을 들머리에 우뚝 솟은 예배당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여느 농어촌 마을의 소박한 예배당의 모습과 달리 하나뿐인 반듯한 2층의 적벽돌 건물에다 높이 솟은 종탑이 더해져 가히 늠름한 모습이다. 알고 보니 그럴 만도 했다. 교회가 설립된 지 무려 111년째, 합신 교단의 소속 교회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가 아닐까 싶다.

1903년 월명교회를 설립한 부해리(傅海利) 선교사(Henry Moro Bruen, 1874-1959)는 경북의 서부지방, 즉 김천 선산 군위 고령 성주 상주 칠곡 등지의 선교를 담당하여 이곳 월명교회를 비롯하여 곳곳에 수많은 교회를 설립하여 이른바 경북선교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 영혼을 구원하라”(Save One Soul)는 주보에 실린 표어가 세기를 넘어 지금껏 한결같이 달려 온 교회의 사명을 큰소리로 외치는듯 했다. 월명교회를 담임하는 안상진 목사는 일찍이 강도사로서 이곳에 파송을 받아 어언 30년을 하루같이 달려오며 성도들과 더불어 교회와 주민들을 섬기고 있다.

이곳 섶밭마을은 불과 55가구에 120여명이 거주하는 작은 농촌마을, 소규모의 과수원과 밭작물을 재배하며 삶의 터전을 이루고 있다. 근처 초등학교가 폐교된 지 오래고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한 때 왕성했던 마을이 쇠퇴일로함은오늘날 대다수 농어촌교회가 직면하는 그야말로 이농현상의 단면이다.

제9차 정기총회 및 제28차 합신농목회가 열리는 날, 조용했던 마을이 모처럼 활기로 가득했다. 오후 3시를 접어들면서 일치감치 남원과 평택에서 단숨에 달려온 승합차량을 시작으로 각처에서 속속 모여든 회원들로 널따란 교회마당은 순식간에 만차를 이루었다. 우리를 맞이하는 월명교회 성도들은 훨씬 먼저 총집합했고 몇몇 직장을 가진 이들까지도 조퇴를 하고 두 팔을 걷어부친채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계단을 올라 예배실에 들어서자면 누구라도 신발을 벗어야 했다. 농어촌교회 특유의 마룻바닥에 가지런히 놓인 장의자는 긁힌 세월의 자국이 적어도 수십 년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 흔한 꽃꽂이를 대신하여 강대상 좌우에는 소철나무 한그루와 대여섯을 합친 정도의 커다란 누렁덩이 호박하나가 놓여 있어 추수감사의 계절을 알렸다.

주보를 들여다보니 모이는 성도의 수에 비해 섬김의 그릇은 과연 교회의 역사만큼이나 만만치 않아 참석한 이들 모두가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농어촌교회가 살아야 한국교회가 산다’라는 농목회의 영구주제를 넣어 깜찍하게 제작한 펼침막은 월명교회가 얼마나 우리 모임을 위해 세세히 준비를 했는가를 짐작케 했다.

농어촌을 목회현장으로 삼은 동역자들의 모임은 만남자체로 서로에게 큰 힘이 되고 격려가 된다. 여기저기 낯익은 얼굴들과 반가운 인사를 주거니받거니 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고락을 함께하는 든든한 친구들이 다시 모였다. 준비된 다과와 함께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짧기만 하다.

어느새 개회예배 시간이 되었다. 각처에서 모인 사람들로 함께한 예배이니만큼 적어도 전국교회 연합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먼 곳 고창에서 온 박종훈 목사의 사회와 가까운 곳 성주에서 참석한 윤찬열 목사의 기도인도 후, 강사로 나선 경북노회장 노주복 목사는 에베소서 3장 2절을 중심으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이라는 제하의 말씀증거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목적하시는바 내가 선 자리가 그 어디든 가장 귀하고 복된 자리임을 일깨워 주었다.

농어촌 지역의 이름 없는 작은 교회라도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고 우리가 서 있는 그 곳이야말로 주께서 세우신 소중한 자리임을 깨닫게 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었다.

저녁 식사시간 월명교회가 준비한 웰빙 한식은 초대받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감탄을 자아냈고 우리 모두는 백년손님이 된 기분이었다. 남녀노소 성도들이 직접 다듬은 쪽파와 마늘 양념에 시골의 전통 두부와 도토리묵, 삶은 고기와 떡, 온갖 나물이 차려져 수라상을 연상케 하는 진수성찬이었다.

담임목사, 원로장로, 시무장로 따로 없이 온 교회가 총동원되어 손님을 시중드는 섬김의 모습을 바라보며 찡한 감동까지도 함께 먹었다. 여기에 농목회가 준비한 통영의 싱싱한 굴이 곁들여져 더할 나위 없는 파티였다.

특강시간을 앞두고 예배실로 들어서니 때 아닌 장마당이 펼쳐졌다. 사연을 알고보니 고대도에서 온 총무 박원열 목사는 지인 장로님을 통해 유행을 살짝 넘긴 와이셔츠 120개를 지원 받았다고 했다. 곁에서는 일일이 치수를 알려주는 도우미까지 등장했고, 미처 생각지 못한 귀한 선물을 가질 수 있었다. 같은 시간 충청노회 농어촌부 간사로 처음 참석한 진천의 유영덕 목사 가족 소개와 환영의 시간도 가졌다.

백믿음터 목사의 “에덴동산의 회복”을 주제로 한 저녁특강은 농어촌목회자들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구수함이 돋보였다. 56세의 늦깎이 신학생으로 함양의 농촌 교역자 없는 상내백교회에 부임한 후 지금의 명실상부한 자립교회를 이룬 과정을 통해 많은 도전을 주었다.

제9차 정기총회를 통해 통영의 김용진 목사가 회장을 유임하고, 지금까지 수고했던 임원들이 분과위원회 활성화를 위한 적재적소에 배치되면서 농목회 임원진은 새로운 인물로 대폭 물갈이 되었다. 특강 및 정기총회를 마치고 나니 예정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늦은 시간 등단한 개최교회 안상진 목사의 “나의 목회사역” 주제 강의는 30년의 세월을 말하기에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어린 시절 하나님의 준비된 부르심을 시작으로 목회자로의 훈련과정을 비롯하여 불신주민 가정의 병문안과 장례봉사를 통해 임종전 주님께로 인도한 일들 그리고 예배당건축 과정의 숱한 애로를 해결 받은 일들을 중심으로 섬김의 목회와 주는 목회를 실천하는 교회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음이 시종 묻어났고 그의 열정적 강의는 퍽 인상적이었다.

밤 열한시를 가까이한 늦은 시간, 주변에 숙박시설이 없어 어둡고 안개까지 자욱한 좁은 도로 위를 한참을 달린 후 마침내 성주의 하늘목장에 이르러 하룻밤을 편히 쉴 수 있었다.

숙소에서도 회의가 이어졌다. 내년 2월로 예정된 전국교회 사모세미나 준비를 위해 간사들은 새로 한 시를 넘기는 강행군을 마다하지 않았다.

농목회장 김용진 목사의 인도로 드려진 아침경건회와 더불어 둘째 날 일정이 시작되었고 밤사이 날씨도 개이기 시작했다. 산 속의 숙소 주변 역시 식당이 없어 다시 한참을 달려 성주참외 비닐하우스 드넓은 들판에 자리한 토브라는 이름을 가진 식당을 찾았고, 노주복 목사가 제공한 따끈한 굴 국밥과 콩나물 국밥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칠 무렵 창녕에서 온 정석중 목사가 양파 박스씩을 나눠주겠노라고 광고를 했다.

다시 월명교회에 도착하니 이번에는 이영경 목사가 나섰다. 청양에서 자신이 직접 농사해서 포장한 흑미 한 봉지씩을 선물로 내 놓았다. 농목회원들이 서로를 생각하며 건네지는 소중한 선물들이 사라져가는 상부상조의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했다.

이날 우리 일행은 성주와 김천 그리고 칠곡과 구미를 전전하는 동안에 서울에서 출발한 총회 농어촌부 서기 장덕만 목사와 회계 김원철 장로가 먼 길을 주저 없이 달려와 주셨다. 반갑게 악수를 나눈 후에 이들과 함께 금오산 호수위의 둘레길 코스를 돌며 트레킹을 즐겼고 모임기류는 한 층 더 화기애애한 상승모드를 이어갔다. 둘레길이 끝나는 곳에서는 금오산과 호수를 배경으로 단체사진도 찍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점심시간뿐, 칠곡대로변에 자리한 한식전문의 한라명가에서 만찬을 제공한 농어촌부 서기 장덕만 목사는 농목회원들과 함께하는 동안 도농교회 직거래 활성화와 농어촌교회 자립방안 등을 토론하며 끝까지 격려를 아끼지 아니했다.

지난 여름 변산에서 열린 농목수련회 강사로 큰 은혜를 끼쳐주신 안만수 목사가 농목회 후원금을 두둑히 보내주었다는 좋은 소식도 닿았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감사를 드린다. 

월명교회의 아름다운 섬김과 동참한 모든 이들의 귀한 섬김을 통해 한껏 은혜를 나눠가진 농목회원들 모두에게 더없이 행복한 이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