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충돌과 교회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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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완전한 법이 없다. 법을 고치려 들면 끝이 없다. 총·노회가 모일 때
마다 법수정 규칙수정안이 빈번하게 상정되고 논의된다. 총회법(헌법)을 고치
려면 노회수의까지 몇해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 거추장스런 법개정과 수정을 
무엇 때문에 해야만 하는가?우리 교회법은 1917년 미북장로교회의 헌법을 우
리 실정에 맞게 번역채용한 것이 우리 교회의 법 설정의 시작이었다. 이후 여
러 해를 거쳐 오면서 필요를 따라 수없이 개정과 수정을 가해 왔다. 마치 우
리 법은 더덕더덕 기워입은 누더기옷과도 같다. 이렇게 누더기법을 들고 수정
하고 개정하느니 보다 새로운 세기가 오고 새로 시대가 열리고 있는 이때 아
예 법 전체를 개정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더 나아가서 한국장로교회 전체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법을 만들면 어떨까! 이건 너무 비약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우리 교단만이라도 21세기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법을 새로 제정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남도(南都)의 어느 큰 교회가 장로, 안수집사, 권사 선
출에 대한 법절차를 새롭게 만들었다. 꼼꼼히 
살펴보니 총회법을 범하지 않
는 범위 안에서 묘하게 선을 그은 것이다. 법이란 요령껏 사용한다면 얼마든
지 뜻대로 할 수 있다는 가정이 성립되는 것이다. 온 교회들이 총회의 큰 법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 요령껏 운신한다면 매우 자유로울 것이며 교권의 개
입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신문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거창한 찬사를 보냈
다. 젊은이들은 멋있다고 손뼉칠 것 같고 총회의 어른들은 이것 좀 이상한데 
하면서도 잡힐 것 없고, 근엄하신 신학교 교수님들은 이것 개혁주의에 어긋남
이 없을까? … 하고 생각할지 모른다. 어떻든 답답한 가슴에 시원함이 파도처
럼 밀려온다. 만일 이것이 보편화 되어 총회의 큰 법이 있고 개교회는 그 범
주 안에서 요령껏 운신한다면 이것은 회중교회의 법질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든 교회가 있고 법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