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대참사의 경고와 교훈
< 정두섭 목사, 전주소망교회 >
“교회는 생명을 구원하는 방주로서 건강한 컨트롤 타워 역할 해야”
실로 대참사였습니다. 6.25 이후에 가장 큰 참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참으로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이런 대참사가 역사에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역사를 통해서 배우지 않는 사람은 그 역사를 다시 반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놀랍게도 사도행전 27장에 세월호 참사와 아주 유사한 276명을 태운 거선이 좌초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대참사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와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거선이 좌초한 이유를 보면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첫째, 때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늘의 이 시대를 가만히 검토해 보면 살기 어려운 시대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어려울수록 정도로 가야 합니다.
둘째, 한 겨울의 불편을 면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한 겨울의 불편을 면하려고 했다가 더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잠시의 어려움을 참고 견뎠더라면 그들은 그렇게 무서운 죽음의 고비를 겪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 가운데는 너무 쉽게 돈을 벌려고 하고, 너무 쉽게 성공하려고 합니다. 반면에 고생을 하려고 하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고, 희생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셋째, 거선이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난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고 백부장이 출항을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선장의 말은 지식과 경험과 과학, 기술의 말입니다. 선주의 말은 돈의 말입니다. 바울의 말은 순수한 신앙의 말입니다. 백부장의 잘못은 바울의 말보다도 선장의 지식과 기술의 말을, 선주의 돈의 말을 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온 인류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 낳으며, 인류에게 가공할 만한 위협과 파멸을 초래할 수 있는 가장 크고 무서운 적은 과학이며, 물질주의입니다. 반면에 바울에게 있어서 핵심은 사람의 생명이었습니다.
넷째,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의 생명과 영혼을 경외함으로 단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천하 보다 고귀하게 여기며 그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대부분 사고의 근본원인은 사람의 생명을 경홀히 여기는 데서 비롯됩니다. 산업화, 물질문명의 발전은 가져왔으나 사람의 생명을 너무나 경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의 대참사는 사람의 생명을 경외하지 않는 우리나라 지도자, 국민정신, 공동체에 대한 거듭되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다섯째, 거선이 침몰한 것은 때 아닌 순풍에 속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순풍이 불자 배는 미끄러지듯이 나아갔고, 백부장과 선주와 선장과 선원들은 기세당당하여 승리의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유라굴로라는 태풍이 어김없이 불어왔으며, 필사적인 노력을 했지만 배는 계속 표류하였고, 모든 것을 바다에 던지고 좌초되었습니다.
바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순풍에 속은 것처럼, 이번 세월호 대참사의 뿌리는 구원파라는 기독교 이단에 있다고 판단합니다. 우리는 거짓되고 사악한, 양의 탈을 쓰고 늑대노릇을 하는 이단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번에 구원파를 비롯한 우리 사회에 독버섯과 같은 사이비 종교들과 기독교 이단들의 뿌리가 뽑히고 건강한 교회가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여섯째,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난 다음, 제일 문제가 된 것은 컨트롤 타워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재난 수습에 있어 컨트롤 타워는 꼭 필요합니다. 반면에 지중해 자초선에는 사고를 통솔하는 탁월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따라 생명을 경외하는 리더십을 발휘하여 이백칠십육 명 모두를 구하였습니다.
고해와 같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교회는 생명을 구원하는 방주로서 건강한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하고, 목회자들과 성도는 생명을 경외하고 구원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