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성경 중심으로 돌아오는 길 _ 이용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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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성경 중심으로 돌아오는 길

 

<이용세 목사 _ 율하소망교회>

 

성경 중심이란 성경 본문 자체를 묵상하여
자신을 형성해 가고 그렇게 순종하여 사는 것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성경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이는 2장의 ‘하나님과 삼위일체’보다 앞에 놓은 것이다. 이렇게 성경에 대한 고백을 가장 우선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하나님에 관한 고백조차 성경을 통해 알려주신 것이어야 함을 천명한 것이다. 1장 ‘성경’의 마지막 10항은 “모든 종교적 논쟁이나 모든 회의의 결론이나 옛날 성경 해석자들의 의견이나 사람들의 교훈이나 영(靈)들을 검토하여 시험하는데 있어서 최고의 심판자는 성경으로 말씀하시는 성령이시다”라고 끝맺는다.

그렇다 오늘도 성령께서는 모든 신자에게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 말씀이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이다. 1장 6항에서는 “하나님의 영광, 인간의 구원, 그리고 신앙과 실생활에 필요한 하나님의 모든 지혜(진리)는 성경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다. 아니면 필연적이고 좋은 추론에 의하여 그것을 성경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중략)”라고 되어 있다. 진정 그렇다. 성경에 우리의 모든 삶에 필요한 말씀과 원리가 있다. 성경은 유일무이한 교회와 하나님 백성의 텍스트다.

하나님은 오늘날 성경을 통해 다스리시고 성경을 통해 우리를 만들어 가시고 성화시키신다. 그리스도인은 성경 말씀을 먹고 산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의 모든 삶은 성경 말씀으로 살게 되어 있다. 우리는 육체가 음식을 먹고 자라듯 성경 말씀을 먹어야 자란다. 우리는 말씀을 흡수함으로 생존하고 회복되고 성장한다.

그래서 교회와 개인의 중심에 성경이 있어야 한다. 성경은 언제나 모든 것에 중심이어야 한다. 어쩌면 이런 말은 너무 당연해서 불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작금의 한극 교회 현실을 보면 성경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런가? ‘교회는 성경 중심이어야 한다’는 구호를 외치면서 실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혹 교회는 성경 중심이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정하면서도 성경이 중심의 자리에서 밀려나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깨어서 팩트 체크(fact check)를 해 볼 필요가 있다.

오직 성경에 의해 세워져야 할 교회가 그 중심에 성경이 없다면 그것은 심각한 일이다. 그것은 지성소에 법궤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위중하며 치명적인 일이다. 예수그리스도가 교회의 진정한 주가 되시는 것은 그 교회가 그의 말씀에 의해 다스려질 때다. 교회가 교회 될 수 있는 것은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있을 때 성령께서 임재 하시어 역사하신다. 말씀과 성령은 함께하신다. 교회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교회만이 인류를 구원할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교회를 금 촛대라고 하셨다(계1:20). 교회의 기능과 역할은 말씀을 수호하고 지키며 전하여 밝히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교회관이다.

그런데 교회의 중심에 있어야할 말씀이 중심에 있지 못하고 엉뚱한 것이 중심을 차지하고 그것에 의해 움직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심각한 변질이고 주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반역이다. 교회는 말씀을 떠나는 순간 모든 것이 공허해 진다. 말씀이 없으면 예배는 인간들의 종교유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사실 말씀의 위기다. 교회가 할 일이 많이 있으나 말씀을 대신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들이 구제하는 일에 힘쓰다가 말씀이 중심에서 이탈되는 일이 벌어졌었다. 그들은 지체 없이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기로 긴급 조치를 취했다. 이 사건은 교회의 본질적인 시험이 말씀의 중심이탈임을 깨우쳐 준다.

성경의 역사서는 말씀이 중심이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대비를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 사도행전이 그랬고, 2000년 교회사가 그랬다. 하나님은 말씀에 대한 태도와 반응에 따라 인생과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 교회가 살길은 성경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돌아와도 성경 중심으로 돌아와야 한다. 여기가 분기점이다. 우리 교회의 미래는 이 문제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성경 중심으로 가는 것일까? 여기서는 관념적이고 신학적인 접근보다 개인적이고 실제적인 면에서 접근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선 ‘성경 중심이 아닌 것’부터 정리하고 가자. 그것은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성경을 믿지 않거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지 못하거나,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것만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이 말했듯이 ‘성경을 묵상하여 자신을 형성해 가도록 성경을 대하지 않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성경 중심은 성경 본문 자체를 묵상하여 자신을 형성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회 공동체가 말씀을 묵상하여 그렇게 순종하여 사는 것을 말한다. 시편의 첫 구절은 성경 중심을 잘 나타내고 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1-2). 여호수아 1장 8절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조건 하나를 제시했는데 그것도 말씀 묵상이었다.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을 차지하는 것보다 말씀을 묵상하여 지키는 것 즉, 말씀 중심의 삶을 더 중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말씀 중심으로 돌아오는 길은 크게 두 길이 있다. 하나는 누군가 본문을 연구 묵상해 놓은 것을 읽거나 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본인이 직접 본문을 공부하고 묵상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 거의 모든 성도가 첫 번째 방법에 의존해 왔다. 그것은 쉽고 편한 길이다. 그것은 지혜이며 겸손이다. 신앙이 어릴 땐 남이 먹여주는 젖을 받아먹어야 한다. 그러나 장성한 자가 되면(되기 위해서는) 설교와 함께 내가 직접 본문을 묵상하면서 말씀을 먹어야 한다. 성경에 관한 서적도 읽어야 하지만 성경 본문 자체를 읽고 연구하고 묵상해야 실제로 성경이 나의 존재와 삶에 중심이 된다.

묵상은 우리의 생각과 인격을 바꾼다. 우리를 말씀으로 형성되게 한다. 묵상할 때 성령께서 말씀으로 역사하시어 우리를 변화시키신다. 묵상은 말씀을 소화하는 것이다. 내면화하고 인격화하는 것이다. 말씀을 머리를 지나 나의 마음 중심에 놓는 일이다. 묵상은 말씀으로 나의 마음을 채우는 일이다. 그럴 때 그 말씀에 의해 살게 된다. 모세는 말씀을 어떻게 다 지킬 수 있냐고 투덜대는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30:14)라고 답했다. 성경 중심은 말씀 묵상으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