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신앙
디지털 포렌식과 칭의
<노승수 목사 _ 강남성도교회>
요즘 세간에 자주 듣는 용어 중에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이란 용어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사용된 포렌식이란 용어가 칭의를 정의하는 용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거 같다.
포렌식은 포럼과 퍼플릭의 합성어로 공적인 재판 혹은 법의학적 용어를 일컫는다. 사건 현장에서 범인은 사라졌지만 현장에 남은 증거를 통해서 사건을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칭의를 흔히 법정적(forensic)이다고 말할 때, 단순히 법률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과거의 영역, 초월의 영역에 대한 증거가 여기까지 남아 있다는 의미다. 칭의는 원래 경험되는 것이 아니다. 하늘의 법정의 선언이라 초월적이기에 경험되지 않으며 과거 역사 현장의 사건이기에 오늘 우리에게 경험되지 않는다.
그러나 법정적이라는 이 용어는 단지 경험되지 않음만을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것은 아니다. 범죄가 경험되지 않지만 범죄 현장이 범죄를 증언해주는 것처럼 우리를 대신해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법정에서 서신 사건과 역사상 빌라도에 법정에 서신 이 사건은 오늘 우리에게 유추적인 증거를 남긴다. 마치 디지털 증거들이 그가 무엇을 했는지를 지웠음에도 그 흔적을 남기는 것처럼 역사에서 증발해버린 현실이 오늘 우리에게 증언을 하고 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역사적 사건이며 이것의 신학적 상승은 하늘의 법정의 사건이다. 우리에게 계시적인 증거를 남기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분리될 수 없는 성화와 함께 실제적인 증거가 신자의 내면에 남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칭의가 법정적이라고 할 때는 두 가지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첫째, 이것이 우리 경험을 넘어선 초자연적이며 과거 역사의 일이며 그리스도가 겪으신 일이라는 점이다. 둘째, 그 구원 역사의 현장은 우리에게 증거를 남겼다. 마치 포럼의 토론과 공적 영역의 토론처럼 백주 대낮에 모두가 볼 수 있게 그 증거를 남겼으며 보는 자는 복이 있으며 귀는 있는 자는 듣게 될 것이다.
이 공적 영역의 증언이 우리 내적 증언과 역사로 되살아나는 사건이 성화다. 그리고 이 성화가 없이 역설적이게도 이 칭의를 경험적으로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