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남자들 쓸쓸하다” _ 김수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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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남자들 쓸쓸하다”

<김수환 목사 _ 새사람교회>

 

음습한 영혼의 겨울이 오기 전
제대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비로소 가을이다. 바깥 창문을 열어젖히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만큼 고대하던 가을이다. 과연 100년의 기상 관측 역사상 유래 없었던 살인더위 후에 온 가을답다. 하늘은 ‘시베리아의 푸른 눈’ 바이칼 호수보다도 더 파랗고, 그 시원함은 신경을 타고 저 영혼 밑바닥까지 내려간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것인가?” 괜한 불안 심리가 작동한다. 그만큼 자연의 조건은 완벽하다. 1년 내내 을씨년스럽고 축축한 재 빛 아래서 살아가는 영국인들이 보면 아마 100개의 감탄사쯤은 쉽게 연발하리라.

그런데 이 축복된 계절에 어찌하여 남성들은 갓 옮겨 심은 묘목들처럼 몸살을 앓는 것일까?… 여성들이 봄을 타듯이 남성들은 가을 탄다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느새 감염이 되었나보다. 갑자기 옆구리가 시리고 허한 느낌이 든다.

옛날 말 타고 전쟁하던 시절, 년 중 말들이 살찌는 가을이 전쟁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뭇 남성들이 가을만 되면 전쟁터에 끌려가서 죽게 될 까봐 중병에 걸린 환자들처럼 시름시름 앓았다고 한다. 요즘은 말 타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비단 가을에만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닌데 여전히 남성들이 가을을 의식하는 것을 보면, 전쟁의 원인만은 아닌듯하다.

작가 박범신은 15여 년 전, ‘남자들 쓸쓸하다(푸른 숲)’ 는 책을 냈다. 개발의 시대에 생활의 문제를 홀로 짊어지고 치열하게 살아왔던 이 땅의 중년들이 자신의 내면과 마주치게 된 어느 날, 텅 비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쓸쓸해하는 남자들의 속내를 진솔하게 그려놓은 책이다.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가족들의 생계에 공백이 생겼던 시절에 삶의 의미 같은 것을 거론 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쓸쓸해서 시름시름 앓아야 할 사람들이 어찌 남자들 뿐 이며, 옆구리 시린 계절이 어찌 가을 뿐 이겠는가? 사실 모든 사람은 모든 계절에 쓸쓸하다. 남자도 여자도, 봄도 가을도 외롭고 쓸쓸한 것이다.

어느 여성이 외로움이 무서워서 결혼을 했는데, 그 외로움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잘못한 결혼만이 아니다. 우리의 쓸쓸함을 완벽하게 해소할 결혼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이 그림자요, 모형이었기에 이미 그 땅에 입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식 할 때가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 있었던 것처럼(히4:8~9), 우리의 결혼 역시도 영적 결혼의 그림자이기에 완벽한 외로움의 해소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혼만이 아니다. 보이는 이 세상의 어느 것도 결코 우리 인간의 본질적 결핍의 마침표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일찍이 어거스틴(St. Augustine)은 “인간에겐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동공이 있다”고 고백했다. 젊은 날, 그는 16세에 사생아를 낳을 만큼, 타락한 육체적 욕망의 시작에서부터 마지막 까지를 두루 섭렵한 사람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참 만족은 없었다. 황홀한 욕망과 쾌락의 무게보다 더 깊은 허무와 고독, 어둠과 혼돈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순되게도 그가 사람들의 입에 의해 ‘성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일찍이 세속적 욕망의 끝을 보았기 때문이요, 우리 안에 뻥 뚫려 있는 동공을,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음을 깨닫고,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았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쓰기엔 너무나 아까운 계절이다. 가능하다면 어딘가에 저축해두었다가 필요할 때, 조금씩 꺼내다 쓰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가을이다. 그러나 남자들 쓸쓸하다. 아니 인간들 쓸쓸하다. 하지만 쓸쓸함이 나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찾기에 너무 좋은 계절이다. 돌이킬 수 없는 쓸쓸하고 음습한 영혼의 겨울이 오기 전에 충분히, 그리고 제대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암5:4; 딤후4:9~13).